[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소설가 김원일은 한 장의 그림을 보고 무력감을 느꼈다. 독일 표현주의 예술의 중심에 있는 케테 콜비츠(1867~1945)의 목판화 <시립 구호소>다.
포대기 속에 잠든 듯 눈을 감고 누워 있는 핼쑥한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굶어 죽기 직전의 모습이다. 아이들을 감싼 채 시름에 찬 어머니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그림 앞에서 “마치 감전이나 당한 듯 그림 속으로 빠르게 흡인되는 마성(魔性)에 전율했다”고 콜비츠의 목판화를 만난 순간을 돌이켰다.
그도 <목숨>이라는 단편을 통해 가난과 못 가진 자들의 설움과 분노를 열심히 소설로 육화했지만, 콜비츠의 그림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굶주림과 가난에 대해, 실오라기처럼 남은 목숨의 애처로움을 두고 이처럼 적확하고 절실하게 표현한 그 어떤 그림도 그때까지 본 적이 없어서였다.
“콜비츠의 그림을 알게 된 후부터 많은 문장을 짜깁기하여 엮어내는 소설보다 한 장의 그림이 주는 전달력이 훨씬 감동적임을 절감했고, 언어가 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실망했다.”
이어 빈곤 문제로 의식 영역은 확장된다. 콜비츠가 활동했던 20세기 초 독일 현실은 지금도 지구상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 속에 방치되어 있다고 개탄한다. 절대 빈곤으로 죽어가는 인구, 탈북자 역시 콜비츠의 그림이 현실로 방치된 셈이라 덧붙였다.
<내가 사랑한 명화>(2018.문학과지성사)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소설가 김원일은 46가지 명화를 통해 삶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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