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곳곳에 있다
[화제의책]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곳곳에 있다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1.27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중지성의 시대...논객 '미네르바' 현상은 당연!

[북데일리] 요즘 최고 화제인물은 단연 ‘미네르바’다. 미네르바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 등을 정확히 예측하며 명성을 얻은 한 인터넷 논객의 필명이다.

그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 속 지혜의 여신이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는 헤겔의 유명한 말은 현실을 예측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논객 미네르바의 신통한 예측력은 더욱 화제를 모은다. 

사람들은 그의 글에 열광한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미네르바의 글을 모은 책을 내겠다고 하자, 주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각 언론도 그의 이름을 비중 있게 다루는 중이다. 미네르바 신드롬은 헛말이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와 경제전문가, 소위 제도권의 경제정책의 실패에 따른 기현상이라고 본다. 제도권의 연이은 헛발질 탓에 시장의 신뢰를 잃자, 비제도권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기 어려운 시대다. 누구나 원하면 ‘앎’을 이룰 수 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모호해 보이기도 한다. 대중의 지식이 가치를 가지고, 이른바 ‘대중지성’이 대접을 받는 요즘이다.

대중과 지성의 조합이라, 예전 같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신간 <대중지성의 시대>(푸른역사. 2008)에 따르면 과거 대중은 무지몽매와 비이성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천한 무지렁이‘로 사회적 담론을 말하고 지식을 과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틀리다. 지식은 지식인과 권력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중의 지식은 무시 못 할 존재로 성장했다. 지난 촛불집회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대중지성의 가장 큰 본원적 힘은 소통과 다중성”이라며 “자신 속에 내장한 상호주관성과 소통성 자체로 인해 대중지성은 새롭고 무한한 가능성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바야흐로 대중지성의 시대다.

미네르바는 이런 대중지성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그의 주장은 일방적이지 않다. 글은 혼자 올렸지만 여러 대중, 즉 네티즌간의 토론이라는 검증을 거쳐 공신력을 얻었다. 저자가 대중지성의 핵심으로 꼽은 소통과 연대과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미네르바의 지식은 대중지성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과거 같으면 미네르바의 주장이 묵살되었을 텐데, 지금은 다른 전문가의 주장보다 오히려 높게 평가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대중지성의 시대여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미네르바 신드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네르바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일부 시각은 어쩌면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일지도 모른다. 과거 촛불집회를 괴담으로 치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미네르바 현상이 정치화 되고, 훗날 그 스스로가 권력화 된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그래서 더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무조건 덮어두고 무시하는 것보다는 생산적인 일이 아닐까. 저자의 아래와 같은 말도 그런 의미일 터다.

“더 많고 더 질 좋은 지식과 교육, 자기와 타자에 대한 동시 긍정,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앎으로 더 많이 연대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더 많은 소통이 더 많고 질 높은 앎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