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 ‘책이 무거운 이유’
시인에게 ‘책이 무거운 이유’
  • 북데일리
  • 승인 2005.11.0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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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무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맹문재 시인의 대답은 뿌리깊은 나무처럼 깊어서 `나무를 뽑아낼 수 없다`.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 알았을 뿐 /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 때로는 겁났지만 /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가족과 집을 담은 1부, 여성성을 이야기한 2부, 노동과 정치를 논한 3부, 인터넷 시대의 지향점을 설파한 4부로 구성된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창비. 2005)에 실려 있는 ‘책이 무거운 이유’는 책 대신 책을 위해 희생된 한 그루의 나무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리하여 나는 한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 몸무게를 달고 / 생활계획표를 짜고 / 유망 직종을 찾아보았다 /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박고 서 있는 / 그 나무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과정’에서 사라진 나무의 침묵과 ‘고됨’을 떠올린다. 맹문재에게 책이란, 삶의 무게와 같은 것이다. 말을 잃은 나무 그루터기에 놓인 삶의 무게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가슴에 닿으면 아프고 애달프다.

[북데일리 정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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