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는 걷지 않는 날이면 책을 든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눈이 아플 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유일한 취미라고. 글을 쓰다 지치면 책을 읽는다. 엎드려서 읽기도 하고 베개에 기대어 읽기도 하고, 책상에 단정히 앉아 읽기도 한다. 한 달 독서량은 40~50여 권. 집에 있는 책이 무려 만 여권에 달한다.
얼마 전 그는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다산초당. 2007)을 출간했다. 2000년에 출간한 <지워진 이름, 정여립>(가림기획. 2000)을 수년간의 고증을 거쳐 전면적으로 개정해 새롭게 펴냈다. 400년 동안 숨겨져 온 정여립 역모 사건의 음모와 진실을 파고드는 그의 남다른 열정이, 조선 최대 역모사건으로 꼽히는 `기축옥사`를 재구성하고 정여립과 죽어간 1000명의 선비들을 역사 속에서 불러낸 것이다.
그는 “역사 공부는 결국 사람에 대한 공부”라며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다보면 더 깊고 폭 넓은 역사가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동안 ‘정여립’에 몰두해온 이유가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그가 추천한 책은 도스트에프스키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열린책들. 2007)이다. 당연히 역사와 관련된 서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소 의외였다. 그는 “시공을 뛰어넘어 천태만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체득하게 되는 것 같다”며 책 추천 이유를 전했다.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 오래 전에 읽고서 꽃아 놓은 세계 시인선집을 틈틈이 꺼내 읽고,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솔. 1997)와 정약용의 <대동수경>(여강출판사. 2001)을 다시 읽기 시작했단다. 또한 시간이 난다면 카프카 전집도 다시 읽어볼 작정이라고.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이 세상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한권의 좋은 책은 카프카의 말처럼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깨뜨리는 것 같은, 도끼로 두개골을 내려치듯’해요. 책을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고... 사람답게 사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유익한 것은 또 있을까 싶죠. 저에게 독서는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아요.”
그가 평생을 두고 사랑해온 우리문화와 책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참으로 ‘문화사학자’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구윤정 기자 kido99@p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