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버튼 누르면 '설레다'
사랑의 버튼 누르면 '설레다'
  • 장맹순
  • 승인 2014.04.2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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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사랑이라는 감정만큼 사람을 환희의 물보라로 적시고 절망의 낭떠러지로 밀쳐내고, 희망의 푸른 하늘로 치올리고, 조바심의 감옥에 가두고, 용기와 헌신과 배려와 굳셈의 전사戰士 로 만드는 마음 상태가 있을까? -개정판 서문

[북데일리] 이 시대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고종석의 책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알마.2014)은 사랑과 관련된 세련되고 풍부한 어휘 사전이다. 76개의 표제어 사랑에 대한 말들에 대한 빛나는 상념들이 펼쳐진다. 1996년 서른여섯 살의 저자가 여드레 만에 탈고를 믿기 어려운 책은 한국어에 대한 직관적 통찰이 화려하다. 그의 사랑의 말들에 대한 빛나는 감성을 만나보자.

<그리움> 어떤 대상을 붓으로 그린다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의 의미 연관성도 충분히 인정된다. 우리는 임을 그리며 그임을 그리는 것이다.(50쪽)

이미 알고 있던 표현을 다른 시각으로 설명하니 재미있다. 그리움은 손만 뻗으면 닿는 것보다 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 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한 마음이다. 저자는 여기서 작가 신경숙의 그리움을 담은 마지막 문장도 예로 든다.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는 그의 말마따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슬프다

눈 맞추다 - 사랑은 눈에서 시작된다. 눈 맞춤은 모든 사랑의 정지整地 작업이다. 눈 맞춤이 있은 뒤에야 입맞춤이 있을 수 있다. 눈이 맞은 뒤에야 배도 맞는다.(64)

몸1 - 몸이 있는 탓에 이렇게 너와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너를 만져 볼 수라도 있을까?(86쪽)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 부는 꼴이나 세기에 따라 건들바람, 돌개바람, 서늘바람, 소소리바람, 황소바람, 고추바람(...) 바람은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들뜸을 나타내기도 한다. 말하자면 매혹된 영혼의 상태를 나타낸다. 바람이 쉽게 드는 성질을 바람기라고 말한다. 바람기 있는 사람이란 마음이 가벼운 사람이다.(90쪽, 91쪽)

설레다 - 설렌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의, 그러므로 당신 몸속의, 사랑의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당신이 접속됐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혈관에 미약媚藥 을 주사했다는 뜻이다.(140쪽)

아름 - 흔히 아름이라는 이름이나 아람이라는 이름과 혼동되지만, 그 이름들 사이의 의미 관련은 형태적 유사성처럼 크지 않다, 라기보다는 전혀 없다. 우선 아름은 양팔을 펼쳐 껴안았을 때의 둘레의 길이를 말한다. … 그리고 아람은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나무에 달린 채 저절로 충분히 익은 상태, 또는 그 열매를 뜻한다. 이 말은 아마도 알밤이 변한 형태일 것이다. 이에 반해 아롬은 동사 알다의 명사 꼴 앎의 중세적 형태다.(196쪽)

사랑의 말들에 대한 단상이 풍성하다. 저자는 몸을 통해 사랑을 바라본다. 시선이 맑고 일상 언어에 대한 감성적 표현은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다. 이 책은 서문에 밝힌 대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말들이고 말들에 대한 사랑의 흔적"이 담긴 책이다. 말들의 풍성한 성찬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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