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5개의 궁이 사대문 안에 모여 있다. 왜 궁이 5개나 있는 걸까. 모두 왕권과 권력 다툼으로 파생된 일이다. 지어진 순서에 힌트가 있다. 나열해보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창덕궁 순이다.
조선 건국의 역사부터 광해군에 이르는 역사를 살펴보자. 조선 개국과 함께 제일 먼저 지어진 궁궐은 경복궁이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한양 천도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왕족과 관료들이 머물 임시궁궐이 필요했다. 이때 정도전 지휘 아래 세워진 궁궐이 경복궁이다.
이후 두 번의 왕자의 난을 겪으며 수도가 두 번 바뀌었다. 개성으로 갔다가 다시 한양으로 수도가 옮겨졌다. 태종 이방원은 경복궁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친족끼리 피를 보았던 장소인 데다, 자신이 직접 죽인 정도전의 손길이 남은 궁으로 들어가기 꺼림칙했을 터다. 이때 새로 지은 궁궐이 창덕궁이다.
이후 경복궁은 타국의 외교 사절단을 맞을 때와 국가 의례를 행할 때만 쓰였다. 이어 즉위한 세종은 상왕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바로 옆에 수강궁을 짓는다. 훗날 성종이 수강궁을 중건하면서 지금의 이름인 ‘창경궁’으로 바꿔 불렀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폐허가 되어버렸다.
궁궐을 복원하는 동안 선조가 묵을 곳이 필요했다. 당시 선조가 지내던 궁궐이 경운궁으로 지금의 덕수궁이다. 광해군 때 이르러서야 창덕궁 복원이 완료되었지만, 창덕궁에 얽힌 과거 일들은 광해군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난 장소였고 계유정난 이후 단종이 세조에게 쫓겨난 곳이기도 해서다. 광해군이 자신이 머무르려 새로 지은 조선의 다섯 번째 궁궐이 바로 경희궁이다. <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알에이치코리아.2019)이 소개한 내용이다.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