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가 '철의 왕국' 불린 까닭
가야가 '철의 왕국' 불린 까닭
  • 김현선 시민기자
  • 승인 2011.01.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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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성형 수술을? 우리가 몰랐던 점

 

      
[북데일리] 철의 왕국 가야를 아시나요? 비록 강대한 국가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뛰어난 철기 제조로 신라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나라! 질문과 대답으로 엮은 「왜 그런지 정말 궁금해요」 시리즈 제38권 <가야를 왜 철의 왕국이라고 하나요?>(권오영 저, 다섯수레)는 아이들 수준에 맞는 48가지의 질문을 통해 가야를 집중 해부한다. 풍부한 사진과 문답식 서술 방식이 특징이다.

가야는 낙동강 서쪽의 옛 변한 지역에서 일어난 나라였다.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와 같은 작은 나라들이 모인 연맹체로 초기에는 금관가야가, 후기는 대가야가 연맹체를 이끌어 갔다. 전성기에는 영토가 지금의 전라도 땅인 남원, 순천까지 이르렀다.

가야 연맹체는 작은 나라들이 제각각 산과 분지에 나누져 있는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과 중국의 교역로를 장악하면서 주도 세력으로 발전해 가던 금관가야가 광개토대왕이 보낸 고구려군의 침입으로 힘을 잃자, 가야 연맹체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가야의 옛 영토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유적은 이들의 문화 수준이 신라나 백제에 결코 뒤지지 않았음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가야는 왜 철의 왕국이라 불렀을까? 가야의 땅에는 철광석이나 사철이 풍부해, 철을 많이 생산할 수 있었다. 풍부한 철 생산과 뛰어난 제철 기술은 고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특히 화폐로 사용했던 커다란 덩이쇠는 가야가 '철'로 움직인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덩이쇠는 크기는 달라도 돈처럼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작은 덩이쇠로는 화살촉을, 큰 덩이쇠로는 투겁창이나 쇠스랑 같은 큰 철기를 만들었다. 별다른 모양이 없는 덩이쇠는 요즘으로 치면 지폐 뭉치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 가야인들도 멋과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성형 수술을 했다는 점이다. 김해 예안리에서는 이마를 돌로 눌러 납작하게 만든 편두가 발견되었다. 편두는 머리에 돌이나 나무를 대고 꽁꽁 묶어서 만들었다. 상당한 고통이 따랐을 편두! 미의 추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가야의 역사, 생활 방식, 문화, 풍습 등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가야 역사 전체를 다루었지만, 하나씩 따로 떼어서 읽어도 무방하다. 놀이하듯 가야인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 땅을 살았던 가야인의 삶과 꿈을 만날 수 있다. 초등 고학년 대상.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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