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세상의 비밀 가릴 수 없단다"
"손바닥으로 세상의 비밀 가릴 수 없단다"
  • 하수나 기자
  • 승인 2009.03.10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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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모든 고민 담겨있는 <질문의 책>
"세상은 놀라운 빛과 비밀로 가득 차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작은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는구나."

[TV리포트]<질문의 책-마틸다의 숨은 행복찾기> (시공사, 2009)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왜 질문의 책일까’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책장을 펴면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행로가 흥미롭게 담겨있다.

이 책에는 크고 작은 고민과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파울, 뚱뚱하고 소심한 탓에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티나, 외톨이 학자 그린베르크 아저씨, 이혼 뒤에도 끊임없이 다투는 부모 밑에서 마음을 졸이는 지몬, 힘겨워하는 사람을 보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주인공 마틸다까지.

'행복'이란 자칫 관념적인 서술에 머물기 쉬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은 우리가 사는 동안 마주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따뜻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재기발랄한 문체로 추출해내고 있다. 여기엔 아이들의 모든 고민들이 담겨있다는 '질문의 책'이란 독특한 설정이 큰 몫을 한다.

내용은 이렇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무뚝뚝한 학자 그린베르크 아저씨는 이웃집 아이 파울이 죽음을 앞둔 외할머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날 밤 아저씨는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를 떠올린다. 옛날 짝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던 소년 시절, 어느 날 친구가 '질문의 책'을 건넨다. 몇 백 년 전부터 내려온 것으로 짐작되는 그 책에는 이 세상 아이들의 온갖 고민과 질문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소년이었던 그린베르크는 그 책을 읽으며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용기와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고민을 해결한 뒤 또 다른 고민에 빠져있는 사촌에게 질문의 책을 건넸었다.

그 질문의 책이 이제 노년이 된 그린베르크의 집을 드나드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게 된다. 아이들의 모든 고민들이 담겨있는 '질문의 책'을 통해 작은 위로와 기쁨을 느끼며 행복의 참의미를 되새기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은 독자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전해줄 듯하다.

특히 이 책의 작가 길라 루스티거는 서술체와 대화체를 번갈아 쓰면서 이야기의 안과 밖을 경쾌하게 옮겨 다니며 재기발랄한 문체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조근조근 아이들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듯 하다가도 어느새 시치미 뚝 떼고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와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게 만들곤 하니 독자는 딴청 부릴 겨를이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 참, 주석에 대해 말을 좀 해 둬야 겠다. 이 소설에는 주석이 아주 많거든. (...주석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도 다시 해주고 앞으로 잘 가라고 빌어주려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땀을 조금 흘리고 숨도 조금 가빠져서 각 장의 문턱까지 달려오지." (본문 중)

이 작품엔 많은 양의 주석이 각 장 끝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봐온 주석과는 달리 본문의 뜻을 풀이하지도 출처를 밝히지도 않는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주석 역시 소설의 일부다. 어린 독자들에게 수다 떨 듯 들려주는 대화체로 등장인물들도 모르는 이야기를 슬쩍 귀띔하거나 독자들이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숨은 의미망을 능청스레 드러내며 책의 재미를 더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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