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맛의 기억만큼 끈질긴 것도 없다. 잊기 힘든 추억과 함께 버무려지면 더 절절하고 질기게 남는다.
이런 면에서 윤대녕 작가의 <칼과 입술>(마음산책.2016)은 음식과 삶 이야기를 잘 버무린 산문집이다. 음식의 기원과 그에 얽힌 일화는 음식과 재료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삶과 잇댄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잔잔한 울림과 작가 특유의 아름다운 글맛을 느끼게 한다.
예컨대 우리 음식 김치는 과거 저, 지 ,침채, 젓국지, 짠지, 싱건지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는데 중국 <여씨춘추>에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며 김치를 먹었다는 구절을 소개하며 김치에 관한 정보를 전한다.
그런가 하면 명태로 잡혀 깊은 산중에서 눈보라와 햇빛, 어둠에 번갈아 익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황태가, 그리고 밥상 위의 황탯국으로 올라오기까지 고단함을 이야기한다. 한 그릇의 해장국에 서린 음식의 가치를 저자는 ‘사람의 울혈진 속을 달래주는 맑고 뜨거운 해장국’이라 표현한다.
또 조선 시대 아름다운 달항아리와 항아리에 남겨진 얼룩을 달 그림자에 빗대며 옛 어머니들의 고단한 생을 떠올린다. 지금이야 항아리의 아름다운 자태만 보이지만, 달항아리는 본래 서민들이 부뚜막에 놓고 쓰던 간장 단지였다. 그는 단지에 배어 나온 간장 얼룩을 보고 거기에 서린 옛 어머니들의 고단한 생을 읽어냈다.
음식을 소재로 한 산문집임에도 불구하고 입맛 돋우는 화려한 수식은 없지만, 음식과 삶을 말하는 섬세한 표현은 저마다 간직한 맛의 기억을 불러내는 신기한 힘이 있다. 책은 <어머니의 수저>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다시 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