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 일이?] 서울 벤츠 열대중 아홉은 조폭?
[책속에 이런 일이?] 서울 벤츠 열대중 아홉은 조폭?
  • 김지우
  • 승인 2009.01.20 0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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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현직기자의 터프한 보고서

[북데일리] 조폭 영화의 유행을 걱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현실을 왜곡시키고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다. 쇠몽둥이와 회칼, 피범벅, 난자라는 단어가 연상되듯 조폭 영화는 말 그대로 잔혹하다.

그런데 최근엔 영화 '친구'와 '초록 물고기'와 같은 '조폭끼리의 패싸움 뉴스'가 별로 없다. 실제로 조폭 세계의 풍속이 많이 바뀌었다.

옛날엔 소위 나와바리(영역)싸움이 치열했다. 주로 호텔 나이트클럽이다. 제한된 영역을 차지하려다 보니 조직간에 피튀기는 전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요즘엔 수입원이 다양하다. 싸울 일도 별로 없다. 그냥 서로 나누고 피한다.

신간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동아일보사.2009)엔 조폭들의 현주소가 생생하게 나와있다. 김두한-시라소니-이정재-이화룡처럼 한시대를 풍미했던 주먹들부터 조양은, 김태촌에 이르는 '유명 조직'까지 계보를 망라했다.

그중 전 '안토니피 보스'라는 안상민씨 이야기에 흥미로운 대목이 많았다. 저자는 당사자를 2001년에 인터뷰했다. 안토니파는 1980년대 서울 종로와 명동 및 강남 일대를 주름잡던 폭력조직.

책에 따르면 주먹들이 놀던 세계가 요즘 달라졌다. 주 수입원도 다양하다. 예전엔 유흥업소나 도박장, 건설업계의 이권을 챙겼다. 그러나 최근 주먹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사채다. 주먹들이 움직이는 자금은 수천억대. 안씨의 말.

"최근 몇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이권은 벤처기업입니다. 주먹들은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직접 운영합니다. 주식에도 투자를 많이 합니다. 주로 작전세력과 손을 잡죠. 작전에 개입할 때 주먹들이 확보하는 자금은 2천억~3천억입니다."

코스닥의 일부 회사는 '무늬만 코스닥'인 경우가 적지 않다. 매출이 신통찮으면 퇴출된다. 때문에 '자본'을 구하게 되고, 이 때 조폭 자금이 '해결사'로 등장한다. 조폭은 자금을 빌려주고 주식을 인수한다. 쉽게 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런다음 주가조작을 하고, 차익을 남기고 팔아 넘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언이다.

안씨는 "주먹들은 자기과시에 돈을 엄청 들인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안씨는 전성기였던 1980년 대 중반 벤츠500을 탔다. 서울 거리에서 찾기 힘들었다는 차였다고 한다. 안씨의 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다음이었다.

"요즘은 센 놈이 참 많아요. 저도 예전엔 몇천만원짜리 옷을 입어 봤지만, 요즘 잘 나가는 주먹들은 그런 옷을 한번에 대여섯 벌씩 사들입니다. 한 달 수입이 보통 수억원대입니다. 푸조 도요타 크라운과 같은 최고급 외제차 아니면 안 탑니다. 지금 서울 시대에 벤츠가 1000대 있다면 그중 900대는 건달 것입니다."

책을 쓴 조성식 기자는 현 동아일보 신동아팀 차장이다. 사건 추적과 고발성 기사를 많이 쓴 기자다. 이회창 씨 두 아들 병역면제나 통일교 이면을 파헤치는 기사를 썼다. 쉽지 않은 기사들이다. 조폭 건도 보통 사람이 보기엔 정말 어려운 '접근'이다. 이를 대변해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1995년 3월 조폭 세계의 전설적인 인물 조양은씨가 출소했다. 이후 조씨는 행방이 묘연했다. 그의 출소로 조폭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상황. 언론과 검찰이 그를 수소문 했다. 조성식 기자는 극비 정보를 빼내 조양은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단독 인터뷰를 따냈다. 그러나 훗날 조성식기자는 가슴을 쓸어내릴 말을 조씨 측근으로부터 듣게 됐다.

"조 기자가 병실에 처음 찾아왔을 때 말이야. 우리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아? 다른 조직에서 보낸 칼잡이가 아닌가 싶어 순간적으로 탁자 밑으로 손이 갔다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탁자 밑에 신문지를 싼 칼을 넣어두었거든. 여차하면..."

책엔 듣기 힘든 조폭 세계의 이야기가 많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음으로 가름한다.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조 기자의 직업적 열정의 소산물로, 폭넓은 취재와 냉철한 분석이 돋보인다. 쉽게 접근하기 힘든 어둠의 세계를 이처럼 날카롭게 도려낸 그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안대희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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