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유럽 면도칼 지성, 고드의 글
[화제의책]유럽 면도칼 지성, 고드의 글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2.18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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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한계-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비판

[북데일리] ‘대운하 논란‘ 2라운드가 시작됐다. 2012년까지 14조원을 투입해 4대강을 살리겠다는, 이른바 ’4대강 정비사업‘ 계획을 국토해양부가 최근 밝히면서다.

논란의 핵심은 4대강 정비사업이 대운하사업을 위한 포석이냐 아니냐다. 대운하는 한참 전 여론에 밀려 폐기됐는데, 그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려 한다는 것. 이를 둘러싸고 ‘정부의 사기극’, ‘대운화와는 별개’ 등 고성이 오가고 있다.

그런데 이 논란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보인다. 4대강 정비사업과 대운하사업이 가져올 폐해에 대한 언급이 적다는 점이다. 최근 보도를 살펴보면 사업의 실효성과 정부의 국민 기만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인상이다. 특히 ‘정부가 또 거짓말을 한다‘는 비판이 많이 눈에 띈다. 논란이 정치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바탕 대운하 관련 기사가 쏟아질 때 크게 다뤘던 사안이라서 그런 걸까.

신간 <에콜로지카>(생각의나무. 2008)는 이런 요즘 주목할 만한 책이다. 현재 언론이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정부가 벌이려는 사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돕기 때문이다.

저자는 철학자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극찬한 바 있는 앙드레 고드다. <에콜로지카>는 고드가 죽기 전 자신이 직접 고른 7편의 글을 엮은 책이다. 여기서 그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밝히고 대안을 모색한다.

최근 정부 사업과 관련해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6장 ‘가치 없는 부, 부 없는 가치’다. 여기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성장인가?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가? 성장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져다줄까?”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성장이다.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내놓는 장밋빛 미래는 믿을만한 걸까. 책에 따르면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 정부의 관심은 성장 그 자체지, 성장의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책결정자들은 성장의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은 국내총생산의 증가, 즉 상품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일 년 동안 교환되고 판매된 상품의 양, 교환된 화폐의 양이 증가하는 것이죠. 국내총생산의 증가가 국민이 자신에게 필요한 생산물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러한 성장은 우선 자본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지 주민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런 식의 성장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빈곤을 양산한다”고 경고한다. 또 “종종,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에게 이익을 안겨주며, 환경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는 커녕 그 질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가 쓴 ‘성장’에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이나 대운하사업‘으로 바꿔 넣어 보자. 지금 현실에 대한 쓴 소리로 고스란히 바뀐다.

고드는 자본주의를 재생불능이라고 규정한다. 지금 이대로의 무분별한 성장, 더 많은 생산과 소비의 갈구는 공멸을 낳는다는 뜻이다. 앞으로 있을 삽질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지, 아래 저자의 주장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자본회전의 가속을 쫓다 보면 당장의 이윤이 줄어들게 만드는 것은 모두 배제하기에 이릅니다. 따라서 산업생산이 지속적으로 팽창하게 되면 자연히 천연자원이 초토화되기에 이르지요. 자본의 무제한적 팽창이 필요하다 보니, 자본은 이윤을 남기고 파는 제품들로 천연자원을 대체하기 위하여 자연과 천연자원을 파괴하려 듭니다.-중략- 당장의 경제성장과 투자 수익률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과 투쟁하는 한, 이러한 파괴와 약탈의 공동책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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