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잘 추는 비, 시뮬라르크로 알고 있었군
춤 잘 추는 비, 시뮬라르크로 알고 있었군
  • 이인 시민기자
  • 승인 2008.12.12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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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노동과 디지털 미디어를 살피다

[북데일리]김주환 교수가 지은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생각의 나무. 2008)는 상당히 흥미로운 얘깃거리들을 던지네요. 1장에서는 기호학을 바탕으로 기호와 미디어를 얘기하며 가추법(가설추리법, abduction)을 다루고 있고 2장에서는 물질 노동에 대비되는 커뮤니케이션 노동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요. 3장은 매체발전의 역사를 정치, 경제, 문화 변화와 연동하여 살펴보고 4장은 디지털 존재와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철학을 끌어들여 분석하지요.

말만 몰랐지 생활에서 널리 쓰는 가추법

벌써부터 어렵다고 느껴지시나요. 다행히 지은이는 되도록 이해하기 쉽게 쓰고 있지요. 여러 학자들 주장과 논문을 따오지만 자신의 말로 다시 덧붙여 설명을 해주기에 아주 어렵게 느껴지지 않네요. <가추법>을 보기로 들어볼게요. 가추법이란 말만 어렵지 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이에요.

<연역법>

규칙 :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에 연기가 난다.

사례 : 아궁이에 불을 땠다.

결과 : 굴뚝에 연기가 난다.

<귀납법>

사례 : 아궁이에 불을 땠다.

결과 : 굴뚝에 연기가 난다.

규칙 :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에 연기가 날 것이다.

<가추법>

규칙 :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에 연기가 난다.

결과 : 굴뚝에 연기가 난다.

사례 : 아궁이에 불을 때는구나.

천천히 읽어보면 가추법이 별 거 아니지요. 그리고 생활에서는 연역이나 귀납보다 가추를 훨씬 더 많이 쓰고 있지요. 영화관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그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땅이 젖은 것을 보면 비가 왔다고 생각하지요. 물론 가추법에는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지요. 그러나 많은 경우 올바로 결론에 도달하고 기호학자 퍼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올바로 가추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대요.

기호생산 삼중삼각형 이론과 커뮤니케이션 노동

지은이가 만든 기호생산 삼중삼각형 모델은 움베르토 에코가 몹시 칭찬했다고 하네요. 기호생산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기호원료) - 지각하기 - 지각된 것’으로 이루어지죠. 이렇게 지각된 것은 기호화를 거쳐 기호가 되며 기호는 해석이 됨으로써 의미가 생겨요. 여기서 첫 번째, 두 번째라는 것은 설명을 쉽게 하려고 구분한 것이지 기호현상이 꼭 그러한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호생산 과정은 기호-해석하기-의미부터 이뤄지죠.

강의실에서 칠판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 선생이 어떤 단어를 써야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나서, 그 단어를 어떤 크기와 형태로 써야 강의실에 있는 학생 모두가 읽을 수 있을까를 결정한 후, 실제로 손과 팔을 움직여서 글을 쓰는 경우, 기호생산은 세 번째, 두 번째, 첫 번째 삼자관계를 각각 거쳐서 이루어진다. - 책에서

이것은 상품생산에도 적용되지요. 생산물이 가치를 지닌 상품이 되려면 반드시 교환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지요. 상품이 교환된다는 것은 교환당사자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지요. 서로 바꾸기를 원하려면 반드시 상대방의 생산물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지요. 그리고 상대의 생산물의 사용방법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생산물이 자신의 욕구를 만족 시켜 주리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지요.

이러한 정보 조건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노동이라고 하네요. 광고와 마케팅이 ‘허위의식’을 부추긴다고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요.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사용가치의 변화에 따른 수요력의 증가’를 통해 더 큰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죠. 자동차는 운송수단이고 핸드백을 그저 여성용 가방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분별 있는 유물론자’가 아니라 ‘분별 없는 관념론자’라고 이르지요.

현실세계에서 실존하는 것은 의미와 물질의 결합으로서 자동차지 순수한 운송수단으로서 승용차가 아니라는 것이죠. 커뮤니케이션 노동으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여 ‘자본의 재생산’을 하게 되는 것이죠.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가 없었다면 독점자본에 기초한 후기자본주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며 자본주의는 마륵스의 예언대로 벌써 몰락했을 거라고 얘기하네요.

디지털 미디어와 정보 격차에 대한 우리의 자세

정보화시대라는 21세기에 디지털 문명은 도시인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지요. 지금 제가 쓰는 글도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이며 이걸 보는 분들도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거쳐서 보는 것이죠.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으로 이러한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지요. 대중매체를 통해 사람들은 모든 역사 사실을 간접경험하고 있어요. ‘시뮬라르크’는 오늘날 사람들의 경험 양식 이 되었지요.

가수 비나 이효리가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도 다 안다. 다 알지만, 우리가 알게 된 것은 텔레비전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서이다. 설령 이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도 우리는 ‘흠, 역시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 똑같군.’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간접경험을 재확인할 뿐이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이명박이나 이효리는 모두 영상기호화한 대상이다. - 책에서

대중매체는 아날로그 정보에서 디지털 정보로 바뀌고 있으며 뉴미디어들은 기존과 다른 기능들을 하고 있지요. 일방향이 아닌 상호작용으로 TV연속극에 시청자들이 개입하여 마음에 드는 짝과 결혼시킬 수도 이혼시킬 수도 있으며 뉴스 역시 자기가 알고 싶은 분야의 내용만 골라서 볼 수 있게 되었지요. 벌써 포털 사이트에는 독자 마음대로 편집하여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 되어 있지요.

곧 컴퓨터의 주된 장소가 책상 위가 아니라 몸으로 이전될 것이며 ‘입는 컴퓨터’난 아예 몸이나 피부속에 이식하는 컴퓨터가 보편화되리라는 전망이에요. 신발밑창에 발전장치를 달아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전기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구두컴퓨터는 이미 개발되어있고 음성자동인식 장치들은 조만간 키보드를 사라질 것이라고 하네요.

지은이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우선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평등하며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민주주의 사회라 믿는다.”며 디지털 매체를 새로운 정치참여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원칙을 위해 헌법 원칙까지 디지털 매체를 생각하고 근본부터 다시 고려하자고 말을 꺼내내요.

그러나 지은이는 이러한 정보화가 커다란 문제점을 가져올 수 있다고 꼬집어요. 먼저 의료서비스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정보화가 이뤄지고 있지요. 부자들은 원격진료를 받으며 24시간 전산망으로 실시간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러한 혜택에서 소외되니까요. 원격진료 기술뿐 아니라 정보서비스도 기본권으로 봐야하며 정보 빈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얘기하네요.

인터넷 등의 컴퓨터 통신망과 관련해서는 누구나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보서비스 기본권의 개념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마치 누구나 깨끗한 물과 전기를 싼 값에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인터넷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정보 빈자와 정보 부자의 격차 문제도 더 이상 심각해지기 전에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 책에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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