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파동과 닮은 '침묵의 봄' 논쟁
광우병 파동과 닮은 '침묵의 봄' 논쟁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2.05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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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미국서 벌어진 살충제 사건... 결과는 정반대

[북데일리] 지난 여름 광우병 전쟁이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두고 나라가 편을 갈라 싸웠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몇 몇 언론이 힘을 보탰다. 학자들도 참여했다. 미국산 쇠고기 유통업자 역시 정부 입장을 옹호했다. 그들의 동맹은 공고했다.

정부와 언론, 학자, 기업의 카르텔. 비단 2008년 한국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약 50년 전 미국에도 있었다. 레이첼 카슨의 대표작 <침묵의 봄>을 둘러싼 논쟁이다. 신간 <야누스의 과학>(사계절. 2008)을 보자.

1962년의 일이다. <침묵의 봄>이 출간되며 미국 사회가 들썩였다. 책에서 카슨은 DDT를 비롯한 합성살충제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당시 합성살충제는 해충을 박멸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말라리아의 창궐을 막는 ‘경이의 신물질’로 추앙받았다.

카슨은 합성살충제를 방사능 낙진에 비유해 설명했다. 특히 미국인이 사랑하는 새들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되지 않는 이유로 카슨은 농무부, 화학회사, 대학의 화학자들이 유착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자연히 난리가 났다. 소수의 지지자들 빼고는 모두 카슨을 비난했다. 화학산업계는 물론 정치권, 언론, 과학계 등 너나 할 것 없이 카슨의 주장에 반발했다.

벨시콜이라는 화학회사는 책을 낸 호턴미플린 출판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 화학산업계는 25만 달러를 들여 만든 홍보 프로그램으로 카슨의 주장에 대항했다. 몬샌토사는 <침묵의 봄>을 패러디한 <황량한 시대>라는 소책자를 찍어 배포했다. 여기에는 살충제를 금지해 기아와 질병이 만연한 세상이 그려져 있었다.

전국해충방제협회는 ‘레이첼, 레이첼’이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그녀를 조롱했다. 전 농무부 장관 에즈라 벤슨은 카슨을 두고 “공산주의자”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타임지’는 카슨이 “감정적으로 부정확한 분노”를 보였고, “그녀가 비난했던 살충제보다 더 유독한 존재”라며 독설을 날렸다.

이렇게 50년 전 미국과 올해 한국의 여름은 꼭 닮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서로 달랐다.

책에 따르면 권력자들의 요란한 반격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카슨과 환경운동자들을 향한 지지가 늘어났다. 특히 1963년 CBS 다큐멘터리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방영되면서 여론은 뒤집어졌다. 급기야 대통령과학자문위원회에서 그녀를 지지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상황은 카슨에게 유리해졌다.

1964년 카슨은 암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켰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조례를 제정해 특정 살충제의 사용을 금지했다. 오두본협회 같은 환경단체들의 회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린피스 같은 새로운 환경단체 또한 생겨났다.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는 2000만 명이 참여한 제1회 지구의 날 행사가 열렸다. 환경문제를 담당하는 환경보호청 역시 같은 해 창설됐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의 시각변화를 불러왔다. 저자의 말이다.

<레이첼 카슨>
“무엇보다도 카슨은 화학산업이 대변하고 있던 진보에 대한 확신에 경종을 울렸고 이는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우리는 어떤가. 변한 게 많지 않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일단 승리는 정부 쪽이 가져간 듯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는 버젓이 수입됐고, 제법 팔린다고 한다. 간간히 반대 시위가 벌어지지만, 사람들은 예전만큼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진실은 언제쯤 드러날까. 모처럼 폭발한 소비자 안전에 대한 문제, 대중지성의 힘, 시민참여의 중요성 등이 한 때의 추억이 되는 건 아닐지. 얼마 전 촛불집회 주도자가 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역시 적은 관심 속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진제공=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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