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경주 "나의 시어는 늘 낯설고 싶다"
[인터뷰] 김경주 "나의 시어는 늘 낯설고 싶다"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1.1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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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집 <기담>...더 깊은 상징과 형식미, 실험성 갖춰

[북데일리] 시인 김경주는 ‘무사(武士)’였다. 2년 전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서 그는, 웃통을 깐 채 희번덕거리는 검을 휘둘렀다. 날 것 그대로의 언어를 쏟아내는 시인의 칼부림은 낯설고 불편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그가 말하는 ‘기형(奇形)’에 대한 이야기에 시를 읽는 소수는 열광했다. 시집으로는 드물게 1만부 판매라는 ‘기이한’ 성공을 거뒀다. 그 덕에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라는 권혁웅 시인의 단언은 더 생생하게 울렸다.

이런 그가 새 시집 <기담>(문학과지성사. 2008)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맨몸이 아니다. 시인은 두터운 갑옷을 둘렀다. 검을 버리고 육중한 도끼를 들었다. 중장비로 무장한 ‘기사(騎士)’의 풍모가 김경주의 두 번째 모습이다. 전보다 더 깊은 상징과 형식미, 실험성을 갖추고 독자 앞에 섰다는 의미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을까. 8일 그의 작업실 근처에서 시인을 만났다. 의문은 그가 쫓는다는 ‘숭고미(崇高美)’에서부터 풀려 나갔다.

“매혹적이고 미적인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 으뜸을 숭고미라고 생각해요. 숭고미에선 우리 몸이 만들기 힘든 불가능의 이미지가 느껴지거든요. 종교적인 외경과는 맥락이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불화, 현기증, 울렁증, 멀미 등과 맞서는 사제(司祭)의 느낌. 그게 숭고미에요.”

세상의 어지러움을 그리고, 그 속에서 숭고미를 찾고 싶었던 걸까. 그는 이번 시집을 꿰뚫는 단어로 ‘멀미’를 꼽았다. 멀미는 어지러움, 울렁증, 현기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이 그렇게 세상을 멀미나게 만든다는 걸까.

“언어요. 세계가 온통 부조리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보세요. 불구의 언어로 가득 차 있지 않나요.”

여기서 부조리와 불구의 언어는 세상에 온갖 분별없는 말과 글이 난무하는 데서 나온 표현이다. 진짜를 찾아내고, 거짓을 내치기가 어려운 언어의 홍수, 그래서 멀미나는 세상. 그가 바라본 세계다. 시인은 “그런 기이한 이야기들을 담았기 때문에 낯설고 당혹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집”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담>은 첫 시집 이상으로 난해하다. “라미가 는에게 저녁에 손을 잡아주었다 귀머리가 를에게 속삭였다 손에 목을이 달렸다 라미가 을의 생존을 물었고”(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도 저녁은 찾아온다 중)라며 조사가 쓰임새를 뒤집은 시가 있는가 하면, 뜬금없는 문장의 연속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시도 있다. 시 ‘팬옵티콘’의 일부다.

“수십 개의 창(窓)을 띄워두고 나는 갇힌다 어휘로 내려가 나는 발음한다 이 말을 스치고 지나가는 침묵은 깊은 설질(雪質)을 남긴다 말에서 흘러나오는 향연에 참여하기 위해 기억은 자신을 담고 있는 육체와 성애(性愛)를 꿈꾼다”

이처럼 기존의 언어체계를 부정하는 시가 <기담>에는 부지기수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강계숙은 ‘프랑켄슈타인 어(語)’라고 평했다.

시인은 대중과의 소통을 포기한 걸까. 천만의 말이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간혹 자신이 일부러 대중과 벽을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묘사되는 보도에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다.

“소통과 공감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억지로 소통하려고 해 본적은 없습니다.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용기의 문제도 아니거든요. 다만 내가 원하는 방식의 대화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독자라면 얼마든지 ‘우리‘로서 사랑을 나눌 수 있어요. 시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느끼는 방식을 서로 나누는 거예요.”

이번 시집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톡톡 튀는 형식이다. 시집은 희곡의 형태로 문을 연다. “언어가 배역이고 지면이 무대인 언어극”이라는 게 그의 설명. 이 밖에도 깨는 발상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흡연구역을 표시하려고 공백을 두는 가하면, 시집 속의 또 하나의 시집이 등장한다. 악보와 폐 사진, 자신의 판화 사진을 집어넣기도 했다. 활자 크기와 모양 또한 마음껏 바꿔나간다.

이에 대해 시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형식자체가 필요했다기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형식을 스스로 만들어 갔다”며 “별로 파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제 공은 독자에게 넘어왔다. 그의 새로운 언어를 느끼고, 상상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시인은 자신의 무거운 갑옷을 헤치고, 도끼질을 받아내며 ‘기담(奇談)’ 속을 함께 탐험할 독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진 않을 터다. 떠나보낸 두 번째 시집을 뒤로 하고 또 다른 낯설음을 찾으러 곧 발을 뗄 참이다. “시인은 언제나 자신의 언어가 가장 낯설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시인, 바로 그가 김경주다.

(사진제공=추리닝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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