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엔 타버린 정글이 숨어있다
햄버거엔 타버린 정글이 숨어있다
  • 이인 시민기자
  • 승인 2008.10.22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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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미 리프킨의 쇠고기 문명 날카로운 비판

[북데일리]지금 맛있게 먹고 있는 쇠고기가 소를 죽인 몸의 부분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소는 태어나자마자 뿔이 잘려나가고 거세되며 호르몬과 항생제, 살충제가 뿌려지지요. 곡물, 톱밥, 찌꺼기, 오물을 먹으며 사람이 먹기 좋게 될 때까지 갇혀 있다 자동화된 도축장으로 운송되어 그곳에서 도살되죠.

산업화된 세계의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먹게 되는 고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그들은 쇠고기를 장난감이나 의복과 같은 제품들처럼 물질쯤으로 생각하지요.

제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시공사. 2002)을 읽으니 육식과 쇠고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쇠고기가 멀쩡하게 살아가는 생명체의 특정 부위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네요.

이 책은 인류 역사와 문화를 고찰하면서 쇠고기 문명을 날카롭게 파헤친 교양서적이에요.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을 집필한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대단한 시도를 하지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류와 얽힌 역사를 훑으며 쇠고기 산업의 문제를 여러 시각에서 조목조목 짚어주네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 둘 다 죽이는 육식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고 부자들은 고기 때문에 죽고 있지요. 고기를 즐겨먹는 사람들의 몸은 지나친 콜레스테롤로 망가지고 있고 동맥과 조직은 동물성 지방으로 질식하고 있지요. 그들은 심장병과 암, 당뇨병에 걸리게 되고 끔찍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지요. 10억의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으면서 늘어난 지방에 허우적거리는데 다른 10억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영양분조차 공급받지 못해 날로 야위어가고 있지요.

오늘날 만성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3억 명을 넘었지요. 인류 역사상 전체 인구의 20%가량에 이르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린 적은 없어요. 진보를 외치며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역사상 가장 굶주리는 시기가 오늘날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지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늘어난 생산량과 별개로 왜 사람들은 굶주리는지 책은 설명하지요. 10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리는데 세계 곡물의 1/3이 소와 다른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지요. 쇠고기 1kg을 얻으려면 곡식 9kg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덧붙이며 쇠고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불평등한 구조에 참여한다고 꼬집네요.

햄버거에 불타버린 정글이 숨어있다

전 세계에 퍼진 대규모 축산단지는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지요.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1/4이 파괴되어 육우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바뀌었지요. 미국 소비자들은 중앙아메리카에서 수입한 쇠고기로 만든, 5센트 싼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지만 자연은 5조 달러를 투입해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지요. 햄버거 하나를 만들려고 소가 자랄 목초지를 마련하기 위해 정글 5.4㎡를 없애고 있네요.

중앙아메리카에 거대한 축산 단지가 생기자 소수의 삶은 부유해졌지만 대다수 농부들은 극도로 궁핍해졌지요. 현재 중앙아메리카에는 3500만 명이 스스로를 부양할 농토가 아예 없거나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지요.

남아메리카에서는 삼림 개간, 토지 집중, 농업 인구의 강제 이주가 반복되었지요. 아마존 열대우림이 파괴되면서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졌지요. 햄버거 한 개를 먹을 때 20~30종의 식물, 100여 종의 곤충, 수십 종의 조류, 포유류, 양서류가 사라지지요.

하지만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치즈버거를 먹는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 때문에 광활한 열대우림이 베어지고 불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요. 또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채 가난에 시달렸던 수백만 가족들의 분노도 느낄 수 없죠.

인간, 그 어리석음에 대하여

미국에서는 1961년부터 1970년 사이에 소들을 해칠 것이라고 간주되는 대형육식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지요. 덫을 설치하고 독가스를 뿌리며 독약을 놓고 총을 쏘았어요. ‘살육의 향연’을 벌였지요.

육식동물들이 대량으로 학살되자 ‘유해동물’들이 들끓기 시작해요. 생태계 조절기능이 파괴되자 토끼, 다람쥐, 캥거루쥐, 땅다람쥐 및 여타 설치류들이 주기로 창궐을 하지요. 정부 관리들은 육식동물과 예전의 생태 균형을 되찾으려 하지 않고 독약이 든 곡식을 공중 투하함으로써 설치류의 수를 조절하려 하네요.

그러자 메뚜기, 방아깨비, 수확개미 및 여타 곤충들이 떼로 나타나면서 생태계는 더욱 불안정해졌지요.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하며 대응했지요. 그로 인해 생태계는 더욱 약화되었고 토지는 사막이 되었다고 지은이는 지적하네요.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은 환경도 파괴하고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로 범벅이 된 고기를 먹게 되지요.

햄버거의 정치사회학

영양학자 진 메이어는 ‘남성들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짐에 따라 남성다움의 마지막 상징인 피가 흥건한 고기조각을 먹음으로써 남성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말하죠. 지은이는 더 나아가 날고기를 ‘힘, 남성지배, 특권’ 과 동일시하는 문화상징을 언급하며 쇠고기가 남성 지배를 단단하게 하고 계급차별을 조장했다고 분석해요.

또한 햄버거에는 현재 문명의 가치와 감수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진단하죠. 햄버거를 구입할 때마다 미국의 세계관, 지배원리, 목적을 덩달아 사들이는 셈이지요. 햄버거는 국수주의와 식민주의의 이익을 늘렸으며 그것은 전 세계에 사회 불평등과 경제박탈을 강화했다고 자세하게 밝히네요.

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먹는 즐거움과 여유를 빼앗아 갔다고 분석하지요. 햄버거는 유기적인 조직대신 기계주의를, 정신주의 대신 실용주의를, 공동체 규범 대신 시장 가치를 보여주며 우리 자신을 생명체에서 자원으로 격하시켰다고 비판하네요.

쇠고기, 그 차가운 악을 넘어서

지은이는 강도, 강간 같이 눈에 보이는 나쁜 짓에 대비하여 쇠고기를 차가운 악(cold evil)이라고 규정해요. 차가운 악은 합리성을 갖춘 조직과 탄탄한 논거에 바탕을 한 제도와 개인이 저지르게 되요. 오직 시장의 효율성과 실용주의만을 내세우며 삶을 상품처럼 만들고 소외시키는 것이 차가운 악이에요.

책 원제가 beyond beef 듯이 제리미 리프킨은 육식, 그 차가운 악을 넘어서자고 해요. 쇠고기를 먹지 않는 않음으로써 방탕한 소비를 조장하는 시장을 멈추게 할 수 있고 현대식 초대형 비육장과 도살장에서 고통스럽게 죽는 소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육식을 그만두는 일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지는 위대한 상징이자 실천 의미라고 평가하네요. 육식을 끊으면 ‘생태계의 르네상스’가 오게 되어 심해부터 성층권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지요. 자연을 사람들이 거주하는 근본 공동체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고 전망하네요.

게다가 질병이 줄어 수많은 사람들이 보다 건강해지고 건강관리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이 삶의 질 향상에 쓰이게 되며 동시에 더 많은 농경지와 더 많은 곡물이 빈자들에게 제공될 수 있지요. 북적거리는 도시 빈민촌에서 농촌으로 대대적인 이동이 촉발되어 사람을 위해 곡물을 재배하며 소규모 자급자족 농업이 다시 이뤄질 것이라고 조망하네요.

수십 쇄를 찍은 이 책이 나온 지도 6년이나 지났지만 육식의 종말은 오지 않았지요. 여전히 열대우림은 불타 없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리며 동물들은 햄버거로 만들어져서 패스트푸드체인점에서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고 있지요. 책을 덮으며 “육식이 종말이 되면 역사상 가장 대단한 식량 재분배가 이루어져 인류가 새로운 형제애로 뭉치게 된다.”는 지은이의 말을 읊조려 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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