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겉과 속 다른 자기계발서 ‘황당’
[기자수첩] 겉과 속 다른 자기계발서 ‘황당’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9.05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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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말로 유혹하고, 뒤에서는 '행복=성적순' 딴소리

[북데일리] 최근 겉과 속이 다른 책 한 권을 읽었다. 신간 <학교 시험에 나오지 않는 인생을 배워라>(스마트주니어. 2008)다.

일단 제목은 훌륭하다. 표지에 써진 “대한민국 10대들이 스스로 아끼고 성장하게 하는 학교 밖 인생수업!”이라는 문구 또한 좋다. 교과서, 즉 학교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서문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지금 여러분은 꿈과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해뜨기 전에 일어나 자정이 넘어서까지 교과서와 참고서에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이 인생의 성공을 결정해주지는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더 나은 선택과 기회를 제공해줄 뿐이지요.”

입시에 찌든 10대를 이렇게 위로해주다니. 10대라면 눈물 한 방울 흘려도 이상할 게 없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쯤 되면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와 사회가 강요하는 ‘좋은 대학=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등식 말고 다른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왠일. 본문으로 들어가자 저자는 돌변한다.

“현재의 여러분에게 공부는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적은 대학입시뿐 아니라 졸업 후 사회에 나갔을 때 여러분을 보여주는 명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은 불공평’ 할뿐더러 ‘행복은 성적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p67)

완벽한 배신이다. 앞에서는 교과서가 전부가 아니라고 하더니, 뒤에 가서는 교과서를 파라고 강조하고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외치는 이 책, 황당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갖 공부 방법을 전수한다. 물론 인생 공부가 아닌 교과서 공부, 즉 좋은 대학 가기 위한 공부다. “공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한 의식”까지 가져야 한단다.

제목, 표지, 서문에 실린 말을 전혀 책임지지 않는 책이다. 그럴듯한 말로 유혹하고, 나중에 딴소리를 한다.

자기계발서 중 ‘앞뒤가 안 맞는 책이 많다‘는 지적은 독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독자도 많다.

이 책이 딱 그런 경우다. 혹 멋모르고 이 책을 사본 청소년이 실망감에 책 자체를 기피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제발 책 한 권을 쓰더라도 책임감을 갖고 쓰자. 잘못 만든 책 한 권이 독자를 떠나게 만든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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