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상에 어퍼컷 날린 사람들
부조리한 세상에 어퍼컷 날린 사람들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8.29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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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한 마디 외친 인권지킴이 38명의 이야기

“하얀 우유의 힘, 남자는 강하게, 여자는 날씬하게.”

[북데일리] 몇 년 전 공공기관이 낸 우유광고 카피다. 이 문구 뒤엔 근육질의 남성과 날씬한 여성이 웃고 있었다. 이 광고 카피는 2달 후에 이렇게 바뀌었다.

“우유는 힘! 마시자. 114가지 각종 영양소의 완전식품 하얀 우유, 우유 한 잔으로 온 가족이 건강하게.”

이를 바꾼 사람은 올해 29살 봉현숙 씨다. 흔한 말로 ‘일개 개인’이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 광고가 성차별을 조장한다며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광고를 만든 기관은 농림부와 농협 한국 마사회다. 혼자 힘으로 국가 기관을 움직인 것이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신간 <세상을 향해 어퍼컷>(샨티. 2008)에서 그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여성의 상품화를 앞장서서 막아야 할 공공기관이 성차별을 조장한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

처음에 홍 씨는 망설였지만 곧 행동에 옮겼다. “침묵은 또 다른 잘못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당시 상황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런 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성차별은 당연한 현상처럼 인식되고, 그것은 사회적 차별로 굳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직접 시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침묵한다고 해서 나까지 침묵하는 건 다수에 대한 암묵적 동조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면 좀 번거롭더라도 내가 나서야 한다. 뭐 그런 생각으로 인권위를 찾아갔어요.”

결과는 성공이었다. 인권위가 관련 내용을 조사하는 도중 광고 카피는 바뀌었다. 의외였다.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던 탓이다.

“인권위에 진정해도 소용없을 거라던 친구들이 ‘고맙다. 큰일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많은 걸 느꼈어요. 우리가 일상의 차별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세상은 엄청나게 변할 수 있겠구나, 하는.”

현재 홍 씨는 장애인들의 벗으로 살고 있다. 작지만 소중한 힘을 보태며 “사회 약자들이 아름답게 꾸며가는 공동체 사회 만들기”라는 꿈을 꾸고 있다.

책은 홍 씨처럼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한 마디를 외친 38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저자는 사회부 기자 출신의 육성철. 그가 소개하는 38명의 당당한 소신이 아름답다. 개인의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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