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1,000만 부동산 빈곤층의 참혹한 현실
[화제의책]1,000만 부동산 빈곤층의 참혹한 현실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8.28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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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없어 공중변소 이용...동굴에 사는 극빈층도

[북데일리] 공중변소 앞에 긴 줄이 서 있다. 하나같이 다급한 표정이다. 한 쪽에선 한 여자가 밥 짓느라 분주하다. 부엌이 없어 주인집의 양해를 구해, 밖에서 후다닥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린다. 아이는 수도가 설치된 한쪽에서 씻느라 바쁘다.

왠지 정겨운 풍경.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복고풍 드라마 같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라면? 대한민국의 부동산 빈곤층 이야기다. 그 수가 무려 1,000만 명이다.

이들에게 요즘 부동산을 둘러싸고 나오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다. 얼마전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 투기를 조장하고, 건설업체만 살찌울 거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들에겐 당장 생존이 걱정이다.

신간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2008)가 보여주는 부동산 빈곤층의 현실은 참혹하다. 책에 따르면 집에 화장실이 없어 아침이면 발을 동동 굴러야하거나, 있더라도 재래식에서 냄새를 참아야 하는 사람이 무려 136만 가구 3400만 명이다.

온수가 나오는 목욕 시설이 없는 사람은 71만 가구 176만 명. 전용 입식 부엌이 없는 사람은 36만 가구 90만 명이다. 모두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 자료를 이용한 국토연구원의 2007년 통계에 따른 수치다.

성인이 된 아이와 부부가 함께 몸을 뉘어야 하는 집도 많다. 최소 16만 7,000가구 41만 7,500 명이 그렇게 산다.

너무 좁은 집 또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최저 주거 면적은 11.2평이다. 이는 부부와 8세 이상 자녀 2명이 함께 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11.2평이면 겨우 방2칸과 화장실 겸 샤워실, 밥만 해먹을 수 있는 부엌과 베란다가 전부인 좁은 공간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안 되는 집에 사는 사람이 2005년 현재 82만 8,000가구 207만 명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제사 지내러 온 시누이가 방에도 못 들어오고 밖에 있다가 그냥 가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

더 심하게 사는 집도 있다. 동굴, 움막, 쪽방, 판잣집, 비닐하우스, 지하방, 옥탑방, 공사장의 임시 막사 등에 사는 사람들. 이른바 부동산 극빈층이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극빈층 규모는 총 68만3,000가구 161만 7,000명이다.

이런 빈곤 혹은 극빈층의 삶은 말할 것도 없이 어렵다. 생활의 불편은 둘째 치고, 각종 오염에 노출돼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이에 대해 저자 손낙구는 “투기가 불패신화가 되는 사이에, 수십만 년 전 인류가 살았던 동굴이나 지하에서 살아가야 하는 극빈층의 딱한 삶은 부동산 빈부 격차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책은 어림짐작과 감정에 치우친 맹목적 비난을 거부한다. 저자가 세운 다짐, “모든 것을 통계로 입증한다”는 원칙하에 모든 주장에는 분명하고 명확한 근거가 따라 붙는다.

21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된지 일주일, 부동산 광풍이 예고되는 지금 꼭 한 번쯤 읽어볼 책이다. 1,000개가 넘는 집을 소유한 집 부자가 있는가 하면, 화장실이 없어 하수구에 볼 일을 보는 병든 노인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뒤틀린 현실을 알 수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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