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가득한 '남미 여행기'
사람 냄새 가득한 '남미 여행기'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8.27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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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관광지나 맛집 대신 현지인들의 상처-희망

[북데일리] 요즘 서점가에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여행서의 범람이다. 저자도 참 다양하다. 전문 작가가 쓴 책도 있고, 인기 블로거의 포스트(블로그 글)를 엮어 낸 책도 많다.

그러다보니 읽을 만한 여행서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한 권 펴보면 사적인 감상만 잔뜩 늘어놓은 글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다른 여행서와 별 다를 게 없는 내용으로 꽉꽉 채운 책 또한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신간 <세계의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이학사. 2008)는 반가운 여행서다. 차별화된 컨셉 때문이다.

책은 남미 8개국 즉,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쿠바,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90일간의 여행기를 담았다. 저자는 박수정. 문예지와 계간지, 일간지에 인터뷰와 르포, 칼럼 등을 기고하는 글쟁이다.

책에서 그는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묘사한다. 식민지, 독재 등의 아픈 역사를 안고 살거나 때로는 맞서 싸우는 상처를 그린다. 또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힘차게 발을 내 딛는 희망찬 모습을 소개한다. 한 부분을 옮겨본다.

“토요일 저녁마다 어리고, 젊고, 늙은 아나스타시아 딸들이 성당에 모인다. 미사에서 신부님은 ”우리 공동체는 희망을 갖고 한 발 한 발 걸어왔다. 마음속 눈을 감지 말라. 세상에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거리에는 이름을 잃은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고통 받는 어린이들이 있다. 희망을 갖고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저항하자, 변화시키자“고 말했다. 몽트 세라 성당을 오르는 길처럼, 가파른 길에 놓이고,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삶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래서 다른 여행서에는 있지만 이 책에는 없는 게 많다. 유명 관광지나 숨은 맛 집, 휘황찬란한 볼거리 등이 그것이다. 분별없이 쏟아내는 감탄사 역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사람 냄새가 난다. 어느 여행서보다 가득하다.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따뜻한 향기다.

<꽃을 건네는 로베르토, 저자가 직접 찍었다>
“너무 일을 많이 해서 모양이 바뀌어버린 손. 그 손의 주인은 길가 나무와 꽃들을 보살피고 키우는 일을 하는 노동자, 로베르토다. 금방 사라져버려 갔나 보다 했는데 한 손에 한 움큼 꽃을 들고 와서는 내게 내민다.”

책은 남미의 과거와 현재, 희망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쏟아지는 얄팍한 여행서에 질린 독자라면 읽어볼만 하다. 아래처럼 다른 여행서엔 없는 발언이 이 책엔 있다.

“학살은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벌어진다. 가난을 강요하는 것, 많은 사람을 가난으로 내모는 것, 그것이 학살이다.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고, 질낮은 상업 문화를 강요하는 것, 그것도 학살이다. 생각해야 할 게, 움직여야 할 게 많은 세상이다. 허공에 메아리로 남지 않을 움직임이어야 한다.”

(사진제공=이학사)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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