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을 사랑했던 특별한 여인
곤충을 사랑했던 특별한 여인
  • 이이나 시민기자
  • 승인 2008.08.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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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아트의 선구자, 한 여성 곤충화가의 일생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 나카노 교코 지음, 김성기 역, 사이언스북스, 2003
 

  책의 겉표지에 그려져 있는 화려한 색깔의 나비, 애벌레, 식물은 책을 집어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날개를 활짝 핀 나비의 모습은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아름다운 그림을 누가 그린 것인지 궁금하다면 우선 책을 펴고 볼 일이다.

‘소녀가 곤충을 사랑한다는 거은 오늘날에도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하물며 350년 전의 독일에서는 어떠했겠는가(49p).’
길을 지나가다가 가끔 나무에서 머리로 떨어지는 벌레에 깜짝 놀라며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이다. 대부분 곤충을 두려워하고 징그럽다고 여긴다. 이처럼 꿈틀꿈틀대는 애벌레는 물론이고 왠만한 곤충은 손으로 만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은 특별한 인물로 다가올 것이다. 그녀는 바로크 시대의 곤충화가로 알려진 여성으로, 당시에는 학문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곤충학’을 연구했던 인물이다. 단순히 표본을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찰한 곤충을 묘사한 그녀의 작품은 후세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천성이 착한 소녀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고, 시키는 대로 얌전히 집안 살림을 배워 갔다(51p).'
그녀는 후처의 딸로 태어나 불안정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과 다를바 없이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 청소, 요리 등 정숙한 부인이 되기 위한 예절교육과 집안일을 배웠다. 소녀 메리안은 자신의 친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집안교육도 잘 받았고, 결혼을 하여 두 딸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인 ‘굴레’를 벗어나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아웃사이더'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녀의 특별한 매력은 바로 그녀가 '곤충화가'라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메리안은 자신이 관찰한 생물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책의 앞부분에 실려있는 파인애플 그림은 누군가가 파인애플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로 이국적이고 낯선 느낌을 준다. 그만큼 그녀는 사물을 보는 시선이 여느 사람과 달랐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그녀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직접 사람을 보내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새로운 곤충에 대해 전혀 연구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연구는커녕 설탕이 아닌 것을 찾는다고 나를 비웃는다(179p).'
무엇보다도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나이들지 않는 추진력이다. 그녀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남아메리카에 있는 현재의 수리남 공화국)으로 떠나고자 했다. 몇년에 걸쳐 그녀의 시도는 동인도 회사로부터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한 결과 결국 수리남으로 떠날 수 있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쉰두 살이었다. 그녀가 열대기후를 이겨내고 제작한 <수리남 곤충의 변태>라는 동판화 집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박물학자나 곤충 수집가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미술 애호가들까지 매료시켜, 그녀의 화집은 유럽 각국의 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상류층의 응접실에 진열되었다(211p).’

'메리안의 작품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역시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사이언스 아트’라는 점일 것이다(243p).'
여전히 대중들은 과학을 어려워하고 싫어한다. 소수 몇몇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고급학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과학과 글쓰기를 함께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면서 과학의 대중화 바람이 불기도 했다. 메리안은 곤충학이라는 학문을 예술에 접목시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선구자였다. 그녀가 열대기후를 이겨내고 화폭에 담아온 곤충들의 그림은 당시 학문의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남성학자들에 의해서 폄훼당하기도 했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녀의 곤충에 대한 지식과 식견은 종종 무시당하기 일쑤 였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극복해 내고 그녀가 남긴 그림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처럼 생생하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메리안이 추구한 사이언스 아트(Science Art)는 어려운 과학이 아니다. 메리안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곤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메리안의 작품 속에서 그녀의 열정과 곤충에 대한 애정을 담뿍 느낄 수 있다. 그런 것이야말로 곤충화가, 메리안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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