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신영복' 아름다운 추억
'청년 신영복' 아름다운 추억
  • 이인 시민기자
  • 승인 2008.08.0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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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어린이들과의 만남 훈훈함 안겨줘

[북데일리] 무척 더운 여름날이에요. 옆에 누가 있으면 그 열기에 괜한 짜증이 나기도 하는 팍팍 찌는 날씨에요. 문득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전설이 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감옥에서 어쩔 수 없는 체온 때문에 서로 미워하는 상황에 대한 빼어난 설명은 읽는 이에게 감탄과 함께 슬픔을 안겨주죠. 이런 미움의 감옥에서 신영복 선생은 20년 20일의 수감생활을 하죠.

출간 20년이 된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증보판(1998. 돌베개)에 실린 ‘청구회 추억’을 김세현의 그림과 조병은의 영어 번역을 같이 해서 단행본으로 묶어 낸 <청구회 추억>(2008. 돌베개)은 청년 신영복을 만날 좋은 기회에요.

청년 신영복은 1966년부터 1968년 구속되기 전까지 청구초등학교 학생들과 월에 한 번씩 모임을 갖아요. 그는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짧은 생애에 대한 아쉬움으로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휴지에 청구회 어린이들과 만남을 적죠. 그것이 이렇게 책으로 나온 거예요.

어린이들 눈높이를 이해하려 하고 대등하게 대하려는 태도는 다시 읽어도 인상 깊죠. 월마다 스스로 번 돈을 저금을 하고 문고를 운영하며 책을 읽게 한 일은 가난한 것을 부끄럽지 않게 신경 써주고 아이들의 독립심과 지식을 키워주려는 신 교수의 훈훈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어 코끝이 시큰해요.

그래서 그럴까요? 신 교수가 수도육군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이들은 위병소에서 거절당해도 두 번이나 걸어서 찾아오죠. 그것도 삶은 계란을 싸가지고. “벼르고 별렀던 서오릉 소풍 때에도 계란을 싸가지고 갈 수 없었던 가난한 형편을 생각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는 내용을 읽고 그 장면을 그리게 되네요. 신 교수와 어린이들의 사람으로서 나누는 우정은 참 아름답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분들은 신 교수가 출소한 뒤 청구회 아이들과 만났을지 궁금하실 거예요. 이 책에 신 교수의 후기에 짧게나마 소개가 되죠. 안타깝게도 가난한 달동네 아이들은 일찌감치 헤어져서 서로가 소식이 끊겼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그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네요.

‘나는 같은 추억이라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힘겨운 삶을 이어왔을 그들에게 청구회에 대한 추억이 나의 것과 같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 책에서

아름다운 추억들 만들고 계신가요? 신교수와 청구회 아이들처럼 서로가 진심을 다하는 만남을 하고 싶네요. 이 더운 여름날, 다시 그가 쓴 책들을 천천히 읽어보며 추억을 새겨봅니다.

덧붙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어색한 번역투 제목이에요. 워낙 유명해져서 고유명사처럼 굳어지다시피 해서 출판사에서 고치지는 않았으나 감옥에서 사색이란 제목이 올바르죠.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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