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한 은밀한 일탈
책을 통한 은밀한 일탈
  • 서유경 시민기자
  • 승인 2008.08.06 1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책이라는 단어는 의식하지 않아도 감성적인 사고보다 이성적 사고쪽으로 무게감이 실린다.<책을 읽어주는 여자>(세계사출판. 2008)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손동작을 크게 하며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구연동다. 구연동화속으로 빠져는 아이들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주인공 마리가 읽어주는 책읽기에 매료된 사람들로 이어진다.

책이라는 매개체로 이어진 낯선 타인의 집으로의 방문은 의도하지 않아도 타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호기심으로 먼저 책을 만난다. 마리가 책을 읽어주겠다는 광고를 내고 마리와 만나게 될 다양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에피소드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성이라는 신비한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장애를 가진 소년 에릭, 엉뚱하고 귀여운 꼬마 아가씨 클로렝드, 마르크스를 사랑하는 늙은 백작부인, 퇴직한 홀아비 판사, 돈 많고 음흉스런 기업체 사장. 이 의뢰인들은 모두 책을 읽는다는 멋진 구실로 마리와의 일탈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달콤한 유희를 표현한 책의 구절을 빌미로 마리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소유하고자 한다. 마리 역시 때로는 그 유혹에 못이기는 척 빨려들어간다. 책을 읽어주는 행위가 그토록 관능적일까, 마리, 그녀처럼 책을 읽어보지만 대상이 없는 책읽기는 혼자만의 방백에 불과하기에 매력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의 욕망은 책으로 시작된 소통의 확장이었다. 안에서 밖으로의 확장, 물론 그 소통의 방법이 모두 도덕적인 것은 아니지만 책이 갖는 단편적인 의미를 생각해 볼 가치를 갖는다.

.‘책을 읽어주는 여자’ 는 1986 년 처음 출판되었고 올 해 다시 재출판되었다. 20년이 넘는 나이를 가진 소설이라고 하기엔 무척 세련된 글이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레몽 장이 소설속에서 쓰고 있는 시제이다. 현재형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화자인 마리의 1인칭 시점이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을 동시에 그리고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그가 쓰고 있는 어투는 무척 매력적이다.

서른 넷의 여자, 남편은 있지만 아이는 없는 마리, 그녀의 일상에 책은 새로운 변화를 주었고 그녀와 책으로 이어진 사람들도 책을 통한 변화를 꿈꿨다. 길고 긴 꿈이 아닌 짧은 춘몽에 불과하다. 우리가 책을 통해 만나고자 하는 은밀한 일탈을 발견하게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