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용목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런 의뢰에 먼저 몇 권의 책을 떠올린다. <철학에세이>, <사람다움의 철학>, <조국은 하나다> 등 모두 인생 최고의 책들이다. 하지만 선뜻 권하기가 어렵다. “그간 독재정권이 요구했던 사고와 감수성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책들이지만, 지금 권하기에는 좀 지난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꺼낸 책이 세르반테스의 고전 <돈 키호테>다. “다른 판본을 여러 권 살 정도로 돈키호테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모든 것이 견고하게 짜여 있고, 특정한 기획과 의도에 의해 종용되는 시절이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돈 키호테의 무모함이 우리가 믿는 질서의 허위와 허구를 되짚어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 키호테>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바로 주인공 돈 키호테와 자신의 동일시다.
“자신이 정말 돈 키호테라고 생각하고 읽어보세요. 타자화시켜 누군가를 보는 것과 내가 그의 몸피를 입고 행동하는 건 확실히 다릅니다. 우리 주변엔 괴물(풍차)이 얼마든지 있어요. 도시를 보세요. 빽빽한 빌딩 숲과 뒤엉킨 차들이 있죠. 누구나 돈 키호테가 되고 싶은 상황이 아닐까요.”
그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문학동네. 2008)다. 소설가 조경란이 선물해준 책이다. 시인은 “돈과 성공을 향해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요즘, 세계의 허무와 절망을 느껴보는 게 충격적이지만 오히려 위안이 됐다”고 짤막한 감상을 전했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술을 한 잔 한다는 시인 신용목. <돈 키호테>와 <로드>를 읽으면서 그는 술잔을 몇 번이나 기울였을까.
▶신용목: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외 4편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문학과지성사. 2004),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