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바라본 서울의 과거와 현재
깊게 바라본 서울의 과거와 현재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7.1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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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사람, 공간, 자연, 시간 통찰하는 '서울해석'

[북데일리] <서울은 깊다>(돌베게. 2008)라, 제목이 별나다. 서울의 역사가 ‘깊다’는 표현은 숱하게 들어본 말. 하지만 도시자체를 ‘깊다‘고 표현한 문장이라니. 언뜻 보면 비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처음 책을 대할 때 들었던 의문은 사라진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며 무릎을 친다. ‘제목 한 번 제대로 지었네!’

서울은 깊다, 이 제목에서 서울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도시의 모습을 뜻하는 게 아니다. 서울의 역사, 문화, 사람, 공간, 자연, 시간 등 서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총합이다. 이를 깊다고 설명한 건 각 요소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의미한다. 이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낱낱이 파헤쳐보겠다는 저자 전우용의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표지를 넘기고 책 속으로 들어가면 이런 제목은 괜한 허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구보다 ‘깊은’ 안목으로 서울을 들여다본다.

책을 구성하는 소제목은 총 28개. 땅거지, 뒷골목, 무뢰배, 촌뜨기, 덕수궁 돌담길, 복덕방 등 흔하게 굴러다니는 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저자는 서울의 진면목을 살핀다. 이 중 하나를 살펴보면 이렇다.

‘똥물’과 ‘똥개’를 키워드로 한 장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서울의 현재, 그 중 코엑스 빌딩의 어마어마한 유동인구로 입을 뗀다. 그러더니 도시의 팽창과 확산의 개념을 꺼낸다. 이어 전근대 도시 크기를 규정한 요소들을 짚는다.

이때 오물 처리 능력을 주요 요소 중 하나로 언급하면서 조선시대 똥물의 역할을 들고 나온다. 비로소 핵심 키워드 하나가 등장한 것이다. 이후 저자는 똥물과 개천의 한계를 우리나라 기후 특성과 연관시켜 설명한 뒤 똥개를 끄집어낸다.

그러면서 조선기대 가축 사육의 특징, 우리 조상과 개의 관계, 17세기 민초의 전반적인 삶의 안정성 등으로 논의를 확장시킨다. 게다가 그 중간 중간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이나, ‘마소에 갓 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와 같은 시조 구절을 끌어와 글을 한껏 풍성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입체적인 글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똥개가 왜 똥개인지, ‘개돼지 같은 놈’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등 눈길을 끄는 정보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런 정교한 건축물 같은 글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변함이 없다. 어느 하나 설렁설렁 넘어가는 게 없다.

이런 만만치 않은 작업을 해낼 수 있었던 건 저자의 전문적 식견에 다양한 학문적 관심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전우용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가다. 그는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에서 10년간 서울사(史) 관련 연구를 해온 서울 전문가이기도 하다. 만약 여기에 그쳤다면 <서울은 깊다>와 같은 책을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전공 외 다른 학문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여 왔다.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가급적 이 책을 그동안 우리 역사학이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로 채우고자 했다. 그런 담대한 생각을 품을 수 있었던 데에는 서울학연구소에서 1년에 두어 차례씩 여러 분야의 젊은 학자들과 토론한 경험이 큰 힘이 되었다. 도시계획학, 도시공학, 경제학, 사회학, 행정학, 건축학, 토목학, 조경학, 어학, 문학, 문화인류학 등이 서울 공간과 서울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보고배우면서, 서울의 역사를 보는 안목이 많이 달라졌다.”

이렇듯 각종 분야를 넘나드는 탐구욕과 경험이 다양함과 깊이를 겸비한 서울 해석을 가능케 했다. “이 책의 출판이 또 하나의 부실한 상업적 역사 콘텐츠를 세상에 던져놓는 격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는 저자의 말. 괜한 우려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충분히 단단하고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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