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아픈 삶에서 내딛을 수 있는 용기
[정보화] 아픈 삶에서 내딛을 수 있는 용기
  • 정보화 시민기자
  • 승인 2008.06.25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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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누구나 상처로 딱지 앉은 기억이란 한두 가지쯤 있게 마련이다. 때론 돌이킬 수 없는 오해가 관계를 가위질하기도 하고, 딱지가 평생의 곰보로 남아 삶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잘 살아가는 건 그런 딱지를 살살 떼어내 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한발자국씩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의 동행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반짝인다.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먼저 독자들을 만났던 미우라 시온의 길지 않은 장편소설이 다시 한번 우리를 찾아왔다. 초기작인 <월어(月魚)>(폴라북스. 2008)에서 그녀는 고서점 이야기와 두 청년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정제되지 않은 듯한, 그러나 깨끗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소설은 가르침 없이 우리를 사색의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3대째 이어오는 고서점을 경영하는 젊은 청년 마시키와 뗄 수 없지만 투명한 벽으로 갈려진 또 다른 고서적 도매상인 세나가키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썩은 토마토로 시작하는 둘의 인연은 어느 여름 날, 세나가키가 집은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이어 붙일 수 없는 균열을 만들어낸다.

두 사람의 상처. 그 시작은 어린 아이의 작은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을 뿐인데, 그 골이 깊어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준다. 사소한 시작이 한 사람, 두 사람, 주위 사람들을 하나하나 잠식해가며 뿌리를 뻗어가는 모습에서 보이는, 사람의 나약한 모습들 또한 아릿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기에 소설은 반짝인다. 상처를 안고 꿈을 채 펴지 못한 채 싸늘해진 아비와 달리 꿋꿋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세나가키의 모습은 희망의 또 다른 얼굴이다. 힘겹지만 우연한 아버지와의 만남에서 설움을 이야기하며 과거를 정리할 수 있던 마시키의 모습 또한 미래에 대한 밝음이다. 운명에 이기지 못한 자신들 아버지와 달리 조용히 그러나 꿋꿋이 살아가는 두 청년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렇게 그들은 미약하지만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어루만져준다. 마지막 세나가키의 웃음 어린 독백처럼 그들은 "아직 수행이 부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과거의 상처를 조금씩 보듬어가면서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 미우라 시온은 그런 삶의 단편을, 남몰래 소설을 쓰는 '우사미 선생님'의 입을 통해 말한다.

상처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 좀처럼 그 부위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의 초조함과 조바심. ... 하지만 침묵한 채 거리를 두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어서서 담장 쪽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p.264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픔이 아닌 상처를 대신 치유해주진 못한다. 하물며 자신의 상처조차 치유하지 못하는데, 타인의 상처까지 찾아내 치유해줄리 만무하다. 그러니 지켜보고 조금씩 다가가기. 그게 바로 삶이고 관계 맺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참 잔잔하게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 다음에는 좀 더 정제된 작가의 소설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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