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순위조작, 갈 데까지 갔다”
“베스트셀러 순위조작, 갈 데까지 갔다”
  • 북데일리
  • 승인 2008.04.02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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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베스트셀러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출판사의 사재기와 상도를 넘어 선 무리한 마케팅, 서점의 매대 판매로 인한 순위 조작은 출판계에 떠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때 한국출판인회의는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2006년 벌어진 일명 ‘베스트셀러 사재기 파문’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문화관광부가 `출판물 불법 유통 및 사재기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 1일 방영된 KBS 시시기획 쌈의 ‘베스트셀러, 우리시대 일그러진 자화상’은 작금의 세태를 한 눈에 보여준 방송이었다. 제작팀은 베스트셀러의 순위 조작 증거를 낱낱이 공개했다.

광고도서가 권장도서?

방송은 먼저 매대 판매의 현실을 파헤쳤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소비자의 눈에 잘 띄는 중앙 매대에 책을 진열하기 위해선 한 달에 50만원 정도가 든다. 일명 자릿값이다.

변두리에 있는 매대 이용은 서점에서 판매하는 할인권을 구입해 끼워 팔기를 하면 가능하다. 실제 한 1인 출판사 대표는 “3천 원짜리 할인권을 구입하면 매대에 진열 해주겠다”는 서점측의 권유에 따라 할인권을 샀다. 서점 구석에도 꽂혀 있지 않던 그의 책은 이 방법을 사용한 직후 한 쪽 매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버젓이 ‘권장도서’로 이름 붙여진 진열장도 판매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곳은 1개월 당 4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권장도서가 아닌 광고였던 셈이다.

사재기 방편으로 전락한 저자 사인회

억지 베스트셀러 만들기 방법은 또 있다. 바로 저자 사인회다. 제작팀은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열린 외국 작가 사인회를 관찰했다. 그런데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한 명이 서너 권씩 책을 사거나, 어색한 행동의 독자들이 눈에 띈 것.

알고 보니 동원된 이들이었다. 한 참석자는 “솔직히 서점에 친구가 있어 싸게 해 준다고 해서 구매 부탁을 들어줬다”고 말했다. 서점 직원들이 줄을 서 책을 사는 장면도 목격됐다. 사재기를 했던 한 참석자는 직접 돈을 주고 산거냐는 물음에 대답을 피했다.

사인회를 주최한 출판사 사장 가족이 친구들에게 상품권을 나눠주고 구입을 유도하는 현장도 포착됐다. 출판사 사장은 “대학생인 아들 친구들이 서점에 왔길래 고마워서 선물한 것”이라며 변명했다. 이런 공짜 책이 난무하는 편법은 매출로 잡히고 주간실적에 오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경품과 할인행사를 통해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도 있다. 제작팀은 한국출판학회연구팀에 조사를 의뢰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중 2~3주간 반짝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살펴봤다.

이 중 3권을 심층 분석해보니, 할인규정 10%를 넘어 특가판매, 할인쿠폰, 무료배송, 타임세일 쿠폰, 서평이벤트 등 각종 편법 덕을 많이 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는 책값의 10배가 넘는 15만원 가족사진 상품권을 증정하는 출판사도 있었다.

서평이벤트 독자, 출판사 홍보요원 둔갑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 회원을 대상으로 펼치는 서평이벤트는 요즘 각광받는 신종 사재기다.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특정 신간의 서평을 온라인서점 서평란에 써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책이나 상품권을 공짜로 지급하는 것.

문제는 이렇게 각종 블로그, 카페, 온라인 서점에 올려진 서평이 책의 내용을 모르는 독자를 헛갈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서평단이 칭찬 일색의 글을 쓰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8개월 동안 60여권을 이벤트로 받았다는 한 독자는 “공짜로 책을 받으면 좋게 써줘야 한다는 한국사람들의 정서상 책에 대한 비판을 적기가 어렵다”며 부담감을 전했다.

출판사가 서평이벤트의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적은 비용으로 신간 선전 및 매출 실적을 동시에 올리는 1석2조의 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중소형출판사, 동네서점 죽어나는 현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죽어나는 건 소위 돈 없는 출판사와 소규모 동네서점이다. 한 출판사 대표는 "과거 정가에 70%에 책을 공급했다면 온라인서점은 50%까지 요구할 뿐 아니라 할인과 경품이 더욱 노골적"이라며 “무서운 환경이 두렵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불광동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매출이 많지 않다보니 출판사의 차별이 심해, 판촉대상에 끼워주지도 않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 서점에서는 한 출판사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서 1+1로 포장 판매하는 책을 공급해주지 않아, 인터넷에서 직접 구입해 되파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베스트셀러를 읽고 오히려 책에 실망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까 걱정스럽다"며 우려를 표했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책이 독자에게 악영향을 미치면 향기가 아닌 악취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일침을 날렸다.

독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현혹되지 않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소비자 의식구조가 한 단계 높아지지 않으면 출판사의 마케팅에 놀아나게 된다”는 장서가 오홍근 씨의 충고는 되새겨볼만하다.

(사진 - 방송장면)

[김대욱 기자 purmae33@pimr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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