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한국소설] 달려라 청춘!
[내사랑한국소설] 달려라 청춘!
  • 북데일리
  • 승인 2008.03.0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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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 와 함께 나의 청춘은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서울과 63빌딩은 여전히 안녕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청춘들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갑자기 넘어가는 스무살 무렵. 사회의 기대치가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라는 방패도, 나가 들고 싸울 창도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방패는 빨리 놓쳐버리고, 창은 늦게 획득하는 ‘공백의 청춘’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청춘이라면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와 함께 생의 가장 푸른 시간을 건너가도 좋을 것 같다. 세상의 한 복판에 너무 많이 걸어 들어와 버린 사람들에게도 이 소설은 유효하다. 작가는 ‘경계를 건너는 발길’ 들에 주목한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하나의 경계를 건너가는 인생이어서 그렇다.

1. 낮은 도에 얹힌 깊은 긍정 - 도도한 생활

작품집 <침이 고인다> 중, 단편 <도도한 생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이런 재미와 감동, 탄력만 갖추어준다면 한국문학의 불길은 누구도 끌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애란 소설이 평론가들과 대중독자들 양쪽 세계에서 고른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엄마는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꿈꾸는 보통의 기준에 따라, 우리 집의 어떤 환경과도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를 사들인다. ‘나’는 낮은 도부터 배우기 시작해 어렵사리 한 손가락으로 높은도 까지 칠 수 있는 비법을 배운다. 그러나 미에서 파로 넘어갈 때 피아노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건반위의 유레카는 거기서 멈춰버린다. 나의 삶은 더 이상 높은 음으로 올라가지 않았고 오히려 파열음을 내면서 추락해간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대책 없는 보증으로 엄마의 만두가게는 무너지고, 언니와 나는 서울의 지하방으로 피아노와 함께 이사를 간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을 벌어야한다. 나는 디귿자가 잘 눌러지지 않는 언니의 컴퓨터로 인쇄소 일감을 처리하면서 세상에 디귿자가 들어가는 낱말이 이렇게나 많음에 놀란다. 청춘의 낱말들에는 잘 눌러지지도 않는 문자가 너무나 많지만, 그래도 그 문장을 완성시켜야 한다.

언니가 식당의 계산대에 매달려 늦는 날 밤, 폭우가 내린다. 의지가 될 언니는 오지 않고, 돈이 아쉬운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오고, 툭하면 잔뜩 취해 찾아오는 언니의 옛 애인만 피아노 의자위에 쓰러져있을 뿐이다. 비는 거침없이 지하방으로 스며들어와 바닥에 물이고이기 시작한다.

이 우울한 상황에서 놀랍게도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깊은 울림으로 퍼지는 도를 누른다. 지금의 자신을 긍정하듯 지긋이 도를 울려대자, 연이어 아버지가 가게에서 부르던 노래가 연주되어 나왔다. 여기서 지금의 젊은 문학이 가진 힘을 발견한다. 젊음의 객기어린 분노도 비장한 절망도 아닌, 깊고 따스한 긍정이 있다. 높은 도는 청량하고 맑은 음을 뽐내지만, 짧은 순간의 아름다움이다. 반면 낮은 도는 사람의 발바닥을 닮은 소리이다. 온 지구를 울릴 듯 퍼져나간다. “일단 도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p.10) 출발점을 다시 찾은 나는 서서히 음을 높여나간다. 비가 쏟아져도, 언니가 오지 않아도, 나는 삶의 음을 높여나갈 것이다.

2. 관계에서 생겨나는 조건반사 - <침이 고인다>

여자는 자기만의 방과 경제력만 있으면 행복해 질까. <침이 고인다>를 읽으면 행복의 조건이 그다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날의 행복은 밥벌이의 현장, 만나는 사람, 주고받는 이야기, 하다못해 방안에 놓인 물건의 자리 하나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 못지않게 누군가 곁에 있는 것과 혼자인 것은 중요한 변수이다.

학원 국어강사인 그녀는 매일 아침 알람을 끄는 전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휴일 임에도 학원 체육대회로 출근하고, 교무실 들어서자마자 자신이 후배에게 맡겼던 논술 첨삭일로인해 부장에게 싫은 소리까지 듣는다.

하룻밤 재워주기로 한 것이 지금까지 와버렸다. 결정적 이유는 그날 밤 후배가 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어린시절 엄마가 도서관에서 껌 한통을 쥐어주고 사라진 이야기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개의 껌을 반 나누어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에겐 후배의 출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방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있고,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가 노트북에 차곡차곡 내려받아져있고, 저녁마다 마주하는 밥상도 좋다. 그러나 후배의 부정적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면서 함께 있음이 힘겨워진다. 특히 후배가 그녀의 생활양식을 따라하는 게 제일 싫다.

결국 후배는 떠나고 그녀는 다시 자유와 고독이 있는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온다. 퇴근 후 샤워를 할 때면 따뜻한 물줄기에서 경제력을 갖춘 여자의 행복을 잠시 느낀다. 그러다 잠자리에 누우면 내일 아침 일어나는 시간의 ‘주저‘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룬다.

문득 후배가 남긴 껌 반 조각을 떠올리며 그것을 찾아 입에 넣는다. 껌을 씹으며 엄마와 이별했던 후배는, 이후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면 침이 고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떠나 그녀의 마음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입에는 침이 고인다.

후배의 이야기와 그녀의 일상 속에 번갈아 나타나는 행복과 지겨움을 지켜보면서, 소설을 읽는 내 마음도 움직이고 있다. 문학은 진짜 생명체가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 나도 침이 고이는 조건반사를 경험한다.

청춘의 절망은 끝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 삶은 영원한 청춘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노량진 학원생활을 끝으로 그 곳은 그저 지나가는 곳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지금의 삶도 그곳을 통과하고 있다.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회적 공간의 노량진을 통과하는 이 길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내가 비워야 할 고난의 잔이면 주저 말고 높이 들어 노래 한 자락을 따라 외쳐도 좋겠다.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초라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높은 도도 있지만, 자신의 현재모습과 같은 높이의 낮은 도를 우아하게 누르고 풍성한 울림을 느껴라. 그리고는 혼자여도, 빗속이라도, 달려라 청춘.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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