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쌤의논술돕는책]“욕망, 널 미워하며 사랑해!”
[신쌤의논술돕는책]“욕망, 널 미워하며 사랑해!”
  • 북데일리
  • 승인 2008.02.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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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남경태의 스토리 철학 18>(들녘. 2007)의 저자 남경태. 그는 정말 많은 책을 쓰는 작가다. 온라인 서점에 이름을 쳐보니 모두 114건이 검색되었다. 물론 대부분 역사책들이고 번역서다.

하지만 ‘개념어 사전’이나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 ‘한 눈에 읽는 현대 철학’ 등 철학책만큼은 직접 저술한다. 전공은 사회학이지만 재미있으면서 철학의 앙꼬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학 전공자나 일반 독자 모두에게 환영을 받는 몇 안 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포장하는 기술에서 대한민국에서 남씨를 따라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쓴 이 책 <남경태의 스토리 철학 18>은 철학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시나리오, 일기, 인터넷 댓글, SF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래이 피터슨의 ‘텔 로라 아이 러브 허’라는 노래는 50년대 팝송으로 죽어서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해달라는 슬픈 연인들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노래를 그는 이원론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사례로 쓰고 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아이 러브 허’라고 했다 ‘아이 니드 허’, ‘마이 러브 윌 네버 다이’라고 바꿔 부른다. 남씨는 이원론을 내용과 형식의 상관관계로 보고 있는데 사랑한다는 내용에 다양한 동사가 쓰이는 형식의 사례로 이 노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와 철학이론을 화두로 잡고 이야기를 무겁고 어렵게 풀어가는 기존 철학책과 달리 생활 속의 철학, 문화 속의 철학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은 그의 필력과도 상관이 깊은데 속도감 있는 문체 덕분에 그가 번역한 책은 국내 작가가 쓴 것처럼 매끄럽게 읽힌다. 영어만 잘 한다고 번역 잘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번역하는 주제에 대한 풍부한 상식과 소양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바로 이거다. 그는 자신의 박학다식과 풍부한 소양을 철학에 당의정을 입히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두 18개의 철학 개념이 18개의 스토리에 입혀져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팝송을 이원론을 설명하는 데 활용했는데 현대 철학의 영원한 연인인 영화 역시 자주 동원되고 있다. 무의식의 문제를 다룬 장에서 남 씨는 잭 니콜슨이 주연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주인공 맥 머피를 인용하고 있다. 맥 머피는 교도소보다 편하게 복역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선택했다.

남씨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무대를 미래 사회로 옮겼다. 가까운 미래에 범죄가 자유의지냐, 무의식의 결과냐를 따지는 무의식법정이 개설된다. 이야기는 판사의 시선으로 시작되는데 한 마약중독자가 자신의 중독을 무의식의 결과로 주장하고 판사가 이에 반증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그는 잠깐 감호시설에 있다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진짜 정신병자가 된 맥 머피와 달리 세상이 달라지면서 법과 인권의 개념도 변화된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 편 한 편의 스토리가 영화 같고 드라마 같다.

외국에서는 이런 시도가 많았다. 대학 강단에서는 철학을 사상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일들과 철학 이론을 결부시켜 재가공해서 쉽게 들려주는 임상철학자들도 유럽에서는 적지 않다. 철학을 쉽게 풀어 쓴 이들의 책들이 수십만 부씩 팔리기도 한다.

우리들은 실용, 먹고 사는 문제만이 중요하다며 철학을 비실용적인 학문으로 취급하는데 사실 철학은 개인의 삶에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지적인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서 못지않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렇다면 필자의 삶에는 이 책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을까? 15장 ‘욕망’ 편이었다. 한 노숙자가 손대는 일마다 대박이 터질 것을 약속해주는 악마와 계약을 맺는 이야기. 성공하고 싶은 욕망만큼 간절할 게 있을까? 노숙자는 경마로 시작해서 주식-부동산을 거쳐 떼돈을 벌게 된다.

노숙자는 돈을 벌면 벌수록 돈을 버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욕망의 끝없는 욕심에 질리게 된다. 그래서 악마에게 계약을 취소하자고 요구한다. 당연히 중간에 계약을 취소하면 배상을 해야 했는데 악마는 어떤 보상을 원했을까?

악마는 너무 기뻐했다. 자기도 이 일에 지쳤다면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 맡아달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일을 물려주고 떠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악마는 당신처럼 다시 올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충고를 해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는 모습을 비꼰 재미있는 우화였다. 우리는 자본의 속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돌리고 자본가가 자본을 학대재생산하려는 노력을 자본가의 의식적인 활동의 소산으로 보지만 실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 결과라는 이야기다.

욕망은 그 자체가 주체요, 인간의 이기심을 숙주로 활용해 끊임없이 뭔가를 생산해 낸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끝없이 흐른다. 욕망은 멈춰 있지 않고 흐르기 때문에 그 속성상 앞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욕망과 자본주의를 패키지로 일괄 구입한 서구는 욕망을 혐오시한 동양을 압도하고 서양사를 세계사로 업그레이드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욕망을 방치하면서 또 욕망을 통제하려 했다. 통제의 임무는 자본주의의 쌍생아인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이 맡아서했다.

그래서일까? 자본주의 사회와 그 사회 속에 사는 인간(그들은 욕망을 혐오하며 동시에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다)들은 분열적이다. 물론 이것은 내 주장이 아니라 들뢰즈의 분석이다. ‘욕하면서 따라 하기’, 꼭 내 이야기 같았다. 그런데 나만 그럴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이 한 편에서 꿈틀 대면서 다른 한 편에서는 다른 인간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는가? 해답은 중용이다. 모든 욕망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좋은 욕망과 나쁜 욕망을 구분하고 과도한 욕망을 조절하는 일이 정답 아닐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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