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의동화세상] 그림책으로 시를 쓰다
[헬렌의동화세상] 그림책으로 시를 쓰다
  • 북데일리
  • 승인 2008.02.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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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절제의 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많이 보여주는 것 보다 적게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는 법이죠. 그림만큼 이 법칙이 유효한 분야도 드물 것 같습니다. 비룡소 아기그림책의 51번째 시리즈 <아빠가 지켜줄게>(2007. 비룡소)가 좋은 예입니다.

<아빠가 지켜줄게>는 한 편의 시 같습니다. 아빠가 알을 지키고 엄마는 먹이를 구하러 가는 펭귄의 생태를 짧게 응축시켜 보여준 점.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일러스트로 완성했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매 페이지마다 통일 된 색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펭귄들의 생태에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알을 낳느라 고생하는 펭귄부부를 보여주는 첫 장면은 붉은 톤으로, 소중히 지켜야 하는 알은 남극을 상징하는 파란 빛을 배경으로 따뜻한 노란색으로 대비를 주니까요. 배가 고파 눈이 감기는 아빠펭귄이 노란색으로 표현 된 것도 재미있습니다.

색이 온도를 지니고 있다는 건 아시죠?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한색과 난색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색의 온도를 절묘하게 드러낸 책이 바로 <아빠가 지켜줄게>입니다.

이렇게 미묘한 색의 힘을 펼쳐 보이려다 보니 캐릭터의 선이 간결해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작가는 많은 것을 보여주기 보는 것 보다 절제하면서 더 큰 힘을 펼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 어린 아기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방법입니다.

간결한 선과 시원스레 구성 된 면. 온도를 지닌 색채. 평면적인 그림에서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은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입니다. 2007년에 제 13회 황금도깨비상에 그림책 부문 수상작이죠. 심사를 맡았던 ‘재미마주’의 대표 이호백은 다음과 같이 심사평을 남겼습니다.

“<아빠가 지켜 줄게>는 엄마 펭귄이 알을 낳고, 이를 지키려는 아빠 펭귄의 간단한 이야기를 잘 엮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번 응모작 가운데에서 가장 잘 그렸거나 상대적으로 세련되어서 뽑은 것이라기보다, 다른 작품들에게 없는, 바로 위와 같은 `분명한 시퀀스와 조형적 전략`이 있었던 유일한 작품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전략적이라는 표현입니다. 주제를 압축하는 능력, 이야기에 색채의 힘을 불어넣는 기술, 표현을 절제할 줄 아는 판단력이 작가 이혜영에게 황금도깨비 상을 안겨준 셈입니다.

한편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황제펭귄의 생태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을 낳으면 엄마펭귄은 멀리 먹이를 구하러 가고 아빠펭귄이 알을 보호합니다. <아빠가 지켜줄게>는 그러한 생활을 소재에 바다표범이라는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알을 낳는 감동의 순간, 아빠가 알을 품는 따뜻함에 이들을 위협하는 바다표범을 등장시킴으로서 극적 긴장을 주는 것이죠. 다행스럽게 바다표범의 위협을 피한 아빠 펭귄과 위기를 넘기고 탄생한 아기펭귄. 돌아오는 엄마를 맞이하지도 못하고 잠든 아빠 펭귄의 노곤함 등의 감동이 페이지당 3~4줄은 넘지 않는 짧은 문장에 알알이 새겨져있습니다.

작가 이혜영은 절제하는 것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한 권의 동화로 보여줬습니다. 비단 책 뿐 일까요? 우리의 삶 또한 작게 보여주는 것이 지혜로울 때가 있지요. 그러고 보면 그림책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소중한 보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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