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한국소설] 공선옥과 맨발로 걷기
[내사랑한국소설] 공선옥과 맨발로 걷기
  • 북데일리
  • 승인 2008.02.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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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가난은 행복의 뿌리다. 한 번도 가난한적 없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가난하기 때문에, 그래서 행복하다. 자신이 왜 행복하지 않은가 이유를 알고 싶다면 왜 가난하지 않은가를 물어봐야한다.

공선옥은 맨발의 작가이다. 그의 발은 세상의 어떤 길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그래서 그와 보조를 맞춰 걸을 때 우리도 맨발이고 싶고,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다. <명랑한 밤길> (창비. 2007)을 읽으며, 그와 함께 걸었다.

거친 운명에 잠 못 이루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신 앞에 놓인 삶을 다소곳이 견디기도 하고, 악다구니를 치기도 하면서 꾸려가고 있었다. 그들 옆에서 같이 모멸을 겪고 소리도 질렀더니 어느새 밤은 저만치 물러가고 새벽이 달려왔다. 여럿이 걸으니 발 딛는 곳 마다 길이 되었고, 혼자 짊어져 무겁던 삶은 서로에게 던지며 노는 작은 공이 되었다.

살려고 우는 거지 - <영희는 언제 우는가>

삶의 끝에 내몰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우는 것이다. 운명만큼 모진 세상은 그 우는 일도 함부로 못하게 한다. <영희는 언제 우는가>에서 도박과 폭력의 남편이 집을 나간 날 ‘나’는 친구 영희남편의 부음을 듣고 달려간다. 거기엔 막말을 쏟아내는 시고모와, 위로보다는 감시의 눈길을 던지는 남편친구들과, 그리고 엄마와 긴 세월을 헤쳐가야 할 아이들이 있다.

시고모를 비롯한 모든 문상객들이 대놓고 욕하는데도, 영희는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돌아간 후 방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한다. 앞날이 막막한 ‘나’는 내 울음의 이유를 찾지 못해 우물거리고 있는데, 확실하게 울 이유가 있는 아이들은 있는 힘껏 운다.

보고 있던 영희도 소복을 힘차게 벗어던지고는 떠난 남편과, 남겨진 아이들과, 자신을 위해 마음 놓고 운다. 남에게 보이는 눈물 따윈 잊어버리고 오직 자신의 삶을 응시하며 운다. 그래야 진짜 사랑이고 진짜 슬픔인 것을, 그리고 자기편과 함께 울어야 진정한 위안이 주어지는 것을 영희는 안다.

영희의 울음 뒤로 시고모의 말이 들린다. “태나서 우는 놈이 사는 벱이여. 울어야 산 목심이여. 그저 내 울음이 내 목심줄이여.” 그제야 ‘나’도 내 삶을 위해 운다. 살아보려고. 무슨 이유로든 살아보려고.

비와 달빛을 함께 맞노라면 - <명랑한 밤길>

뿌리를 옮겨 떠나고자 하는 열망과 떠나온 자들의 슬픔이 교차하는 <명랑한 밤길>에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단걸음에 달려가게 하는 공선옥소설의 축지법이 들어있다. 스물한 살 꿈 많은 연이는 오직 도시로 나가살겠다는 열망하나로 간호조무사가 되었지만 홀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가 없다. 면소재지 작은 의원에서 일하던 중,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 같은 남자를 만나고 달콤한 연애를 시작한다. 그는 고향의 거친 남자들과는 달리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줄 줄 알았고, 연이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낯선 세계로 데려다 줄 사람이었다. 엠피스리와 노트북을 남자에게 갖다 주는 여자가 남자에게 생겼음을 알기까지 연이가 그에게 준 것은 무공해채소였다. 그녀는 무공해채소와 같은 내면의 사랑을 주었지만, 남자는 외면적인 사랑을 원했다.

남자의 조소에 왠지 모를 힘이 생겨 연이는 돌아선다. 남자가 차로 바래다주지 않는 밤길에 비가 내리고, 뒤에는 남자 두명이 수군거리며 쫓아온다. 연이는 정미소로 몸을 숨기고, 남자들은 연이가 놓친 고추와 상추가 든 봉지를 발견하고는 집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먹자며 즐거워한다. 그 두명의 외국인노동자 중 한명은 모레 네팔로 돌아간다. 가서 그는 가족들 모두와 함께 산에 올라 네팔의 밝은 달을 보며 앞으로 뭘 할 건지 달에게 물어볼 것이다.

둘은 빗속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정미소 안에 숨은 연이도 그들을 따라 낮게 노래한다. 낭만의 사랑은 사라지고 질퍽이는 밤길 같은 현실이 남았어도, 연이는 그들과 함께 노래한다. 그들은 고기를 구워 채소와 함께 먹을 즐거움에, 오늘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그만 둔 회사생각도 잊어버리고 빗속 밤길을 명랑하게 사라져갔다.

배타적 사회에서 내몰리는 외국인노동자들과 속물적 남자에게 내몰리는 여자는 같은 비를 맞았고 같은 노래를 불렀다. 그랬더니 같은 달을 보게 되었다. 네팔의 둥근달은 모두에게 골고루 희망을 나누어준다. 또 다른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우리도 그들과 나란히 달빛을 맞는다. 희망을 맞는다.

단 하나 남은 희망이 무너질지라도 - <아무도 모르는 가을>

<아무도 모르는 가을>의 인자는 남편과 함께 산골로 들어가 꽃과 나무를 기르며 살고자 한다. 그러기위해 많은 돈도 필요치 않았고 남편이 횟집의 주방장으로 취직하는 것으로 모든 희망의 조건은 충족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홍수에 휩쓸려 실종되어버린다. 너무나 자주 삶은 우리의 단 하나 남은 희망조차 꺾어버린다. 삶의 불행은 소나기와도 같아서 얼마만큼 몰아서 쏟아질지 아무도 모른다.

남편이 사라진 어둠 너머로 인자는 외친다. 사랑한다고. 멋진 집 짓고 살자고. 아기를 안고 한기를 가리기위해 몸을 동그랗게 말고 또 외친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인자의 소리를 어둠 저 편에서 누군가 받았기 때문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는 우리의 외침도 그 사실에 위안을 받아야한다. 품안의 아기는 울기도 웃기도 하며 바동거린다. 한 생명이 지면 다른 한 생명이 피어난다. 그 생명의 영속성 속에서 우리 삶은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다.

공선옥의 이야기는 여기가 시작점이므로, 그의 이야기는 절망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도 백퍼센트의 희망이야기이다. 모든 절망은 주인공들에게 이미 다 찾아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더 나빠질 것 없는 곳에서는 절망이 앉을 자리가 없다. 온통 희망의 꽃밭이다. 이런 꽃밭에서는 냅다 드러누워 즐거운 노래 부르면서 끝없이 울어도 좋다. 남들이 보기엔 슬퍼 우는 것 같아도, 그게 아니다. 공선옥을 읽는 이들은 가난의 눈물겨운 행복을 안다.

[칼럼니스트 제클린 icjackal@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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