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의동화세상]거부 할 수 없는 이국적 매력
[헬렌의동화세상]거부 할 수 없는 이국적 매력
  • 북데일리
  • 승인 2008.02.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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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그림책에도 미덕이 있습니다. 어떤 거냐고요? 당연히 그림이 훌륭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림으로 이야기를 읽어가는 유아기에 훌륭한 그림만큼 중요한 건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더도 덜도 말고 그림으로만 승부하는 이고르 올레이노코프 같은 작가는 정말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환상적인 일러스트, 그 자체로 동화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하니까요.

이름만 듣고도 충분히 눈치 채셨겠지만 그는 모스크바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붓에는 러시아 특유의 공기가 묻어나는 듯합니다. 이국적이면서도 서늘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말이에요.

1953년생인 그는 특이하게도 화학전공자입니다. 하지만 그림이 좋아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보조를 자청하죠.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1986년부터 15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이 멋진 작가의 작품을 쉽게 만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단행본 중 그의 그림은 단 세 권으로 만날 수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일러스트레이션만 했을 뿐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불새와 붉은 말과 바실리샤 공주>(2006. 시공주니어)와 <영원한 황금지킴이 그리핀>(2005. 길벗어린이), <그 마음만 있어도 모두가 행복해>(2006. 넥서스주니어)가 그 주인공들이죠.

헌데 운 좋게 피콜로 세계 그림책시리즈 중 3번째 책인 <잠을 잘 수가 없어!>(2007. 랜덤하우스코리아)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직접 쓰고 그린 작품이랍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잠을 잘 수가 없어!>는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잠자리를 옮겼을 때의 생경함을 느낄 수 있죠. 헌데 화자는 잠을 설치는 이는 첫 장면의 여자아이가 아닌 그녀의 곰 인형 믹입니다. 그의 주인 이름은 미샤. 그녀를 따라 미샤의 할머니 댁에서 낯선 밤을 보내게 되죠.

집이 아닌 타지에서 그의 침대를 대신 한 것은 다름 아닌 여행용 가방. 헌데 이 가방.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참다못한 믹은 결국 편히 쉴 곳을 찾아 밖으로 뛰쳐나가게 되죠.

이제부터 이고르 올레이노코프 그림 특유의 매력이 드러납니다. 묵직한 아크릴 물감에서 느껴지는 창백함 말이죠. 믹이 헤메이는 밤의 풍경에서 러시아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진다는 것은 좀 오버일까요? 하지만 보세요! 기분 좋게 잠들어 있는 저 토끼 말이에요. 불투명한 물감으로 그려낸 저 맑고 깨끗한 느낌. 이고르 올레이노코프가 아니면 누가 그려낼 수가 있을까요?

저 토끼는 누구냐고요? 집을 뛰쳐나간 믹이 처음 만난 친구랍니다. 친절하게도 토끼는 믹에게 자신의 잠자리를 내어주죠. 하지만 믹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풀이 너무 따끔거렸거든요.

결국 토끼를 뒤로 한 채 닭장을 찾아오게 됩니다. 닭들은 높은 홰에 올라앉아 기분 좋게 자고 있는데요. 과연 믹이 이곳에서 잘 수 있을까요? 그럴 리가요. 보기 좋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걸요.

한 쪽 다리를 들고 자는 황새는 어떨까요. 아니면 연못에서 곤히 잠든 개구리의 침실은요?

"안 되겠어, 여기서는 잘 수가 없어!"

결국 믹이 돌아온 곳은 처음 그 자리. 그의 여행 가방입니다.

"역시 내 침대가 가장 좋다!"

믹은 결국 여행 가방에서 깊이 잠들었습니다. 아침을 알리는 수탉이 꼬끼오 우는데도 깨지 않을 만큼 깊이요.

믹이라는 작은 곰 인형의 모험담은 머리가 커 버린 성인에겐 그다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른들조차 설레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그림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묵직하면서도 투명한 톤도 매력적이지만 구도 또한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각도에서 시작된 첫 장면과는 달리 믹의 모험이 진행되면서 그림의 구도 또한 변화를 맞이하거든요.

낯선 밤 여행을 시작하는 믹은 어둠속에서 아주 작게 묘사됩니다. 가로로 길게 드러누운 토끼는 아주 편해 보이죠. 높은 홰에서 떨어져 고꾸라진 믹을 그려낸 각도는 아주 절묘합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거든요. 황새를 따라 한 쪽 다리를 들고 서 있을 때는 아래쪽에서 컷를 잡아 불안정한 느낌을 극대화 합니다. 이런 흐름이 가능했던 것은 혹시 애니메이션 보조시절의 영향이 아닐까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그림책이 좋습니다. 긴 설명 없이 그저 감탄만 할 수 있는 멋진 책 말이에요. 이고르 올레이노코프. 2008년에는 그의 멋진 작품을 더 만나볼 수 있을까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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