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한국소설] 존재의 깊은 곳이 담긴 `집`
[내사랑한국소설] 존재의 깊은 곳이 담긴 `집`
  • 북데일리
  • 승인 2008.02.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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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최근 우리소설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시대의 가위눌림이 줄어든 영향도 있겠고, 독자들이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원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다. 모든 시대는 당대의 가벼움을 탓하였다. 그러나 모든 당대는 그 나름의 진지함을 지니고 있다. 슬픈 이야기도 웃으며 할 수 있는 독자들의 힘이 우리소설을 이끌어 가고 있다.

전경린은 오래전부터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신작 <엄마의 집> (열림원. 2007)으로 인해, 누구나 가벼운 발놀림으로 전경린소설의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세상은 어두웠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생을 독자에게 좀 더 정확히 묘사해주기 위해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집안 거실에 들어오는 빛을 커튼으로 가리지 않는다. 이전의 어두움과 새로 들어온 빛이 섞이도록 내버려두고, 향기 그윽한 차 두 잔을 준비한다. 그 거실에서 엄마와 딸은 자신의 눈에 비친 상대의 삶을 말해준다.

미스엔의 남편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고, 사업에도 악착같이 승부를 걸지 않고, 속물이 되지 않기 위해 가족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파산에 이르게 한 남편. 생존과 진실 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던 시대에 남편은 진실을 고집했고, 가족마저도 그에겐 자신의 진실보다 무게를 갖지 못했다.

남편은 이혼 후 같이 살게 된 여자의 아이 승지마저 엄마의 집에 화염병처럼 투척한다. 승지를 잠시 맡고 있는 중에 엄마는 남편의 진실과 고뇌에 대해 조금씩 이해해간다. 자신의 모성과 여성성의 힘으로 남편의 서투른 삶의 진실도 껴안아 감으로써, 엄마는 더 큰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세상도 내 뱃속으로 지나가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미스엔의 딸

스무 살 대학생 호은은 엄마에게 미스엔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남편이나 자식을 넘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엄마들의 처녀의식을 일컬음이다. 그리고 우리 집 이라는 명칭대신 ‘엄마의 집’ 이라고 부른다. 공간의 주체를 엄마로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미래 모습을 엄마의 집에 담아보는 것이다.

딸은 엄마가 자신의 모성을 완성해 가는데 절대적 요소이다. “내가 너를 안을 때마다 엄마로 커가고 있단다.” 이 소설의 진정성은 엄마와 딸이 서로를 응시하며 발견하게 되는 삶과 사랑, 그리고 그것들을 담아주는 집의 의미에서 빛난다.

많은 날을 살아낸 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말이 있다. 소설의 끝에 가서 엄마는 자신이 겪어서 배운 삶의 진실들을 딸에게 이야기 해준다. 그것은 어쩌면 호은이 지금까지 줄곧 들어왔던 이야기의 반복일지 모른다. 그러나 호은은 이제야 그 많은 이야기들의 의미를 이해한다. 몸과 마음을 서로 스치고 부딪치며 서로가 가진 존재의 깊은 곳을 마주 보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스엔의 집

집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집은 형벌이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우리의 원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장소이다. 그곳엔 순수한 사랑으로 시작되었으나 굳어진 콘크리트 마냥 우리를 옥죄이는 사랑의 모습도 있다. 반면, 집은 자유이고 위안처이다. 그 안에서는 자기만의 표정을 짓고 자기만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엄마는 이혼 후 딸을 처가에 맡기고는, 낯선 곳으로 와서 밤낮 없이 일을 하여 집을 마련했다. 경제적으로 인격적으로 독립을 위한 처절한 투쟁 끝에 엄마의 집은 완성되었다. 엄마는 완전한 자기만의 집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미스엔의 사랑

엄마에게 사랑은 지구에서 달나라로 가는 여행과 같다. 달 표면에 한번 찍힌 발자국은 수백 년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고 모래성을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사랑의 완성된 모습이 달에서는 가능하다. 달나라에 갈 수는 있지만 거기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랑의 정점 속에 안주해서 살 수도 없다. 단지 지구와 달 사이 굉장한 속도로 회전하는 허공만이 사랑의 과정이고 진짜 내용이다.

자신의 일과 인격에 성실한 남자를 엄마는 만난다. 그리고 딸과 승지를 사랑한다. 이 모든 사랑 안에는 잘못과 상처가 생긴다. “인간이 가진 모든 게 선물인 동시에 상처이다.” 엄마는 사랑의 내용물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보듬어 안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미스엔 앞에 놓인 생을 위하여

호은은 엄마를 대할 때마다 생각한다. “엄만 이 인생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을까? 엄마에게 생의 가장 깊은 곳은 어디일까? 지금 이곳일까? 아니면 지나간 어느 시간, 어느 장소일까. 아니면 아직도 엄마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우리 눈에 비친 소중한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이런 것이다. 이 사람에게 생의 가장 깊은 곳은 어디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

미스엔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여성성으로 자기 앞의 생을 품는다. 가족과 세상을 껴안는 일은 아픔으로 가득차있다. 마치 생명을 몸에 잉태하고 낳아 기르는 일과 같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시밭길을 헤치고 자기 생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가는 길임을 전경린은 따뜻한 미스엔의 집 대문을 열며 말한다.

미스엔은 조용히 삶에 복무한다. ‘세속적 조건 속에서 살기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경건함’이 소설<엄마의 집> 안에 있다. 미스엔의 집에서 흐르던 노래를 나도 따라 불러본다. “If life gives you a lemon, make lemonade.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일러스트 - jeje)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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