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한국소설] 갇힌 슬픔에서 열린 위안으로
[내사랑 한국소설] 갇힌 슬픔에서 열린 위안으로
  • 북데일리
  • 승인 2008.02.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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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은 욕망과 그것이 거하는 몸에 대한 집요한 연구자이다. 욕망은 사랑의 가속페달이기도 하면서 파멸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사랑과 욕망의 경계에 서있는 우리는 사랑답게 사랑하기위해 욕망을 좀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천운영의 신작 <그녀의 눈물 사용법>(창비. 2008)을 읽으면, 쇠락해가는 우리 욕망과 육체는 영원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점은 <명랑>을 비롯한 그녀의 전작들에서 잘 표현되어왔지만, 이번엔 그 강렬함을 잃지 않으면서 좀 더 따뜻해졌다. 섬뜩함에서 뜨거움으로 건너온 느낌이다. 이 소설집은 거칠고 파괴력 있는 욕망이 둥글고 감싸는 힘으로 가득 찬 사랑으로 변화하며 달려가는 이야기이다.

1.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발견 - <소년J의 말끔한 허벅지>

누드사진 작가인 남자에게는 젊음이 미의 절대가치라고 생각하는 아내가 있다. 아내는 나이 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못마땅하다. 그의 사진관에 열여덟 살 소년 조수가 들어오고, 이 아이의 젊음과 어울리며 남자는 자신의 소년시절의 탄력을 회복해간다.

아내로부터 이혼통보를 받은 남자가 사진관을 방문했을 때, 소년은 자신의 할머니의 누드사진을 찍고 있었다. 거기서 남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다. 탄력 있는 젊은 아내의 아름다움이 대상을 경멸하고 억압하는 것이었다면, 탄력 잃은 노파의 아름다움은 따뜻하고 자애로운 강물과 대지를 닮았다.

탐하고 소유하고 부수어가는 아름다움이 아닌, 쇠락하고 말라가는 것을 감싸주고 입김을 불어주며,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창조해가는 실험이 이 소설에 있다. 소설은 조건부, 시한부 아름다움을 타파하고, 불멸의 아름다움을 확보해낸다. 남성과 여성, 젊음과 늙음의 경계가 무너진 그 자리에서 발견하는 미의 세계. 그로인해 회복되는, 소년시절 남자의 말끔한 허벅지위로 쏟아지던 햇빛과도 같은 희망 한줄기.

2. 서로에게 흘러드는 위안으로서의 눈물 - <그녀의 눈물 사용법>

아프거나 슬플 때 나오는 눈물은 어떻게 흘리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상처의 치유를 위한 그녀만의 독특한 눈물처방전을 펼쳐본다.

주인공 여자가 일곱 살일 때 미숙아로 태어난 남동생은, 인큐베이터에 넣을 돈이 없었던 가정에 태어난 죄로 하룻밤 장롱 속에 갇혀있다 죽는다. 3년 후 여자가 홍역을 앓던 날 아이는 여자에게 들어와 일곱 살 소년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그 아이일로 인해 가족들은 눈물의 홍수지대와 사막지대로 나뉜다. 아버지, 오빠, 올케는 두려움과 자기연민으로 운다. 반면, 바람나서 떠돌다 돌아온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엄마, 그리고 일곱 살 소년의 다독임을 받고 있는 여자는 울지 않는다.

여자에게 눈물은 세상이 강요하는 슬픔에 대한 굴복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슬픔의 물기를 눈물이 아닌 방뇨로 내보내왔다. 그러던 그녀가 천도제 현장에 있던 아이 잃은 다른 한 엄마를 통해 연민의 눈물을 회복한다. 이로써 여자의 눈물은 단순히 세상살이의 무게로 인해 터져 나오는 슬픔이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버무려지기 위한 따뜻한 습기로 작용한다.

그녀 속엔 여전히 울지 않는 일곱 살 소년이 살고 있어서, 자기 속에만 머물러 존재를 짓무르게 하는 눈물은 막아주고, 타인의 상처에 떨어지는 물약으로서의 눈물을 흐르게 해준다. 이제 그녀의 눈물은 자신의 세계에서 타인의 세계로, 갇힌 슬픔에서 열린 위안으로 건너가는 강물이 된다.

3. 비현실 세계에서 깨닫는 현실 - <내가 데려다 줄께>

제자와의 성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내가 데려다 줄께> (2008 이상문학상 우수작)에서 욕망이 가진 진실의 가변성을 읽는다. 제자가 강압적인 폭력이라며 남자를 고발하자, 남자는 진실을 죽음으로 입증하겠다며 늪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늪가에 사는 가족들에 의해 구조되고, 그 집에서 환상적인 일들을 겪게 된다. 비현실감이 가득한 환경에서, 남자가 증명하고 싶은 진실도 그 명도가 늪의 안개처럼 흐려진다. 늪지대 가족을 따라 남자는 늪으로, ‘노래하는 탑‘으로 다니면서 상처의 치유를 경험한다. 동시에 자기가 진실이라고 강하게 믿었던 자신의 욕망은 어쩌면 타인의 욕망을 부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

이 단편속의 ‘늪’ 대신에 ‘소설’ 이라는 낱말을 대입해본다. 우리 삶과 욕망의 진실을 보기위해 가끔 현실보다는 소설이라는 허구세계에 몸을 담궈보자. “내가 치유와 진실의 세계로 데려다 줄게” 라며 소설이 우리 손을 이끌 것이다.

혼자 슬프면 절망이고, 같이 슬프면 위안이다. 갇히면 쾌락이고, 흐르면 사랑이다. 천운영은 그녀의 사랑 사용법을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설렘도 열정도 아닌, 위안이죠.”

(일러스트 - je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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