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아름다웠던 시인, 나무에 기대앉다
가난이 아름다웠던 시인, 나무에 기대앉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10.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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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에서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에 적힌 발문이다. 추운 날 한 그루 <나무> (2002. 창비)이기를 꿈꾸는 김용택 시인의 세한도를 따라 섬진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 가보자.

“가난은 아름다웠지만/귀향은 치욕이다//....../아이들도 아내도 서울에 두고 빈집에 돌아와 날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손에 잡히지 않는 낫과 괭이와 등에 닿지 않는 지게를 때려부수고 녹슨 쟁깃날을 내던지며 밤이면 아, 밤이면 밤마다 별 볼일 없는 내 일생의 서러운 논밭을 뒤적인다/......//가난은 아름다웠지만/고향은 치욕이다”(‘1998년, 귀향)

고향으로의 귀향은 귀양이 되어 시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환란은 이 땅의 수많은 가장들을 가정으로부터 유폐시켰다. 시인은 가시나무 둘러쳐진 유배지 너머로 보이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한다.

“저 건너 강기슭에/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는 그때쯤/쟁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이 소 받아라//아버지는 땀에 젖은 소 고삐를 내게 건네주었습니다”(‘이 소 받아라’)

아버지에게서 가족이라는 고삐를 받아 쥔 시인은 고요한 섬진강가에 홀로 나와 흘러가는 것들을 묵묵히 바라본다.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강물은 깊어졌어/한없이 깊어졌어/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그냥,/있었어”(‘나무’)

그렇게 한 시절 나무로 있으니 세파에 옹이 진 마음을 다독이는 채송화 꽃밭이 달빛아래 화안하다.

“달빛은 환해서 세상의 모든 욕망을 죽이고 나무만을 따로따로 달빛 아래 세운다. 달빛은 모든 것들을 떼어놓고 너희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그렇게 보여준다. 물만 흐를 줄 안다. 발 밑에서 참지 못하고 깔깔대는 까만 채송화씨들이 세상을 걷느라 두꺼워진 내 발바닥 깊은 속살에 닿는다. 살아있는 씨가 세상의 정곡을 찌른다.”(‘겨울, 채송화씨’)

이제 나무를 스쳐갔던, 나무 사이로 흘러갔던 세상 것들이 나무에게로 와서 시가 된다.

“나무에게로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찾아간다. 별, 해, 달, 눈이 가고, 비가 가고, 나도 가고, 나무는 시다. 나무는 소설이다. 잎 피는 나무는 혁명정부다. 새 연인이다. 새로 쓰는 역사다.”(‘봄바람에 실려가는 꽃잎 같은 너의 입술’)

시인의 집, 둥그런 창으로 난 초겨울 풍경. 가을마저 쉬 버리는 벚나무 사이, 잊지 않고 먼 곳에서 보내온 안부에 시인의 <세한도>가 초연하다.

“운동장 벚나무는 붉은 옷을 다 벗는데, 그 나무 사이로 우체부가 빨간 오토바이에 ‘시의 집’을 싣고 온다.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없는 그 집, 집안에서는 너무 덥고, 집밖에서 눈도 없이 바람만 차다. 보아라, 잠시 놀러와서 빌려 사는 세상의 집들이 내가 살기엔 너무 크지 않느냐.”(‘잠시 빌려 사는 세상의 집들이 너무 크지 않느냐’)

세상의 집들을 벗어나 ‘푸른 산을 그리며 메마른 땅에 꽂히는 삼대 같은 저 소낙비’를 뚫고, 세상 모든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집, ‘나무’가 여전히 푸르름을 알겠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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