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자연과학= ?
고전문학+ 자연과학= ?
  • 북데일리
  • 승인 2008.01.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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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SF소설은 다른 분야와 달리 작가의 창조적 역량이 중요하다. 단순히 현시점의 최첨단 과학을 통한 미래 예측 외에 인류 문화 전체를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소개할 (베가북스. 2007)은 고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트로이 전쟁을 신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독특한 시점으로 기술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갖게 한다.

소설은 40세기 화성의 올림포스를 무대로 하고 있다. 호머의 일리아드를 뼈대로 하드SF 에서나 나올 전문용어는 책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영문학을 전공한 댄 시먼즈는 책 곳곳에 일리아드에 나오는 구절들을 끼어 넣는다. 거기에 더해 셰익스피어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아름다운 문구들을 배치해 넣는다. 저자는 고전문학과 자연과학을 자연스럽게 접목시킨다.

“당신의 셰익스피어는 사건에 대한 반응을 통해 인간의 모든 면을 보는 것 같고, 행위로 정의되는 캐릭터를 통해 깊은 본질을 찾아내는 것 같소. 프루스트의 캐릭터들은 그와 동일한 면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을 깊이 파고들지요. 당신의 음유시인은 이번 탐사를 지휘하고 있는 코로스 Ⅲ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당신은 어둠의 여왕을 타고 깊이 잠수하여 암초와 단단한 바닥과 다른 생물과 반향위치결정법을 통해 온 세상을 탐구하니까요.”

이와 같은 인문학의 자연과학으로의 변환은 책 속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작가는 일리아드의 트로이 전쟁을 태양계 전체로 확장시킨다. 아킬레스가 속해있는 아카이아인과 헥토르가 속해있는 토로이인과의 전쟁이 일리움 평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목성의 달 유로파 속에 살고 있는 지각이 있는 유기체 모라벡 들은 잠수정을 타고 화성으로 진입한다.

분노, 질투, 명예욕 같은 인간적 면모를 갖고 있는 올림포스의 신들은 일리움 평원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전투에 개입한다. 그리고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지구의 역사학자 토마스 호켄베리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하는 순간전송 기계인 QT메달을 통해 트로이 전쟁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전개해 나간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빛난 부분이라면 일리야드에서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렌과 역사가 호켄베리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절세의 미녀인 헬렌은 아무런 의심 없이 호켄베리의 말을 믿고 꿈같은 첫날밤을 보낸다. 고전문학을 잘 알지 못하는 요즘의 독자들도 책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기막힌 설정으로 보인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신화적 상상력의 산물인 “아프로디테의 거울”을 과학적 산물로 묘사해 내는 방식을 보자. “나는 헬렌이 지금보다 더 이상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거울 표면을 만진다. 유리가 아니다. 그것은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것이 유리보다는 노트북 컴퓨터의 LCD 화면에 가깝다. 어쩌면 조각 장식이 있는 뒷면에는 강력한 마이크로 칩과 좌우대칭 알고리즘, 이상적인 비율, 기타 인간의 미를 규정하는 요소들이 프로그래밍 된 비디오가 장착돼 있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묘사는 “아프로디테의 거울”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준다. 현재의 과학은 이미 고대 세계에서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이 하는 역할을 대체한다. 작가는 소설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과학적 배경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誌) 에서 얻었다고 이야기한다.

살아있는 유기체 모라벡의 존재근거는 로버트 T. 파팔라르도의 ‘유로파의 감춰진 대양’에서 얻었고,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순간이동은 앤톤 자일링거가 기고한 ‘양자 순간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소설 전체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과거에서 미래로의 순간이동과 뒤틀려진 시간관은 폴 데이비스의 ‘타임머신, 어떻게 만들 것인가’ 라는 기사를 참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40세기 화성의 올림포스에 어떻게 고대 세계의 신들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뭘까. 시먼즈는 소설 후반부에 약간의 힌트를 주지만 명확한 해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프로스페로는 허구적 개념이고 그리스의 신들은 신화죠. 그리고 그들이 여기 모습을 드러낸 건 인간이나 후기-인류가 변장을 한 것일 뿐이고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진짜 프로스페로이고... 정말 그리스 신들이라면?”

“어떻게 저 신들이, 토가를 입은 사람인지 신인지, 전차를 타고 다니는 무리들이 신화가 아니며, 연극을 하다 정신이 나가버린 후기-인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가 있죠? 당신 혹시 저 사람들이... 우주의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나요? 잃어버린 시대에 이 행성이 폭발하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고대 화성인들이라고요?”

유로파의 지하 얼음 속에 생존해 왔던 기계생명체 오르푸와 만무트의 대화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커다란 의문부호를 그리게 한다. 그리고 2008년 가을에 번역 출간할 후속작 “올림포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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