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없는 세상은 구라!
철학 없는 세상은 구라!
  • 북데일리
  • 승인 2007.12.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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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구라를 잘 치는 사람”이라고 하면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 책의 제목만 보면 철학자들이 ‘구라 쟁이’란 뜻 같다. 철학자들은 정말 구라를 잘 칠까? 필자의 경험 상 그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위대한 철학자들은 틀림없이 그랬을 것 같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레토릭이나 변증의 대가들이었으니 언변은 위대한 철학자의 필요충분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철학하는 사람들이 ‘구라 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철학에게 구라 대접을 하는 요즘 시대에는 철학이란 쓸모없는 것,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는 탁상공론이란 식의 폄하가 분명 있다. 먹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되면 다 거짓말이요, 헛소리라고 치부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철학이 구라가 아니라 모든 것을 먹고 사는 문제로 환원시키는 실용과 실사구시의 세상이 좀 더 구라스럽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철학=구라”로 치부하는 경향은 갈수록 심해질 듯하다. 하지만 이런 걱정도 해본다. 철학 없는 과학이 황우석 교수를 낳았고 철학 없는 경제가 양극화를 부추겼고 철학 없는 법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양산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철학 없는 교육이 바로 입시지옥과 사교육 열풍의 진원지라는 주장에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통합논술에는 교과서가 중요하고 철학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철학 없는 논술의 종착지는 이들과 다른 모습일까?

결론은 철학은 논술을 하든, 사업을 하든, 다단계를 하든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사실 알고 보면 철학 책만큼 재미있는 책도 없다. 소수지만 철학 책에 맛들인 학생들은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처럼 철학책들을 읽어내는 경우도 보았다. 이들은 생각하기 좋아하는 학생들인데 그 이유를 물으면 철학 책들을 통해 자꾸자꾸 사유의 나래를 펼 수 있어서란다.

일단 이 단계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철학사와 철학자들 이름과 계보는 간단히 훑고 철학하기에 도전해 보는 거다. 마치 비틀즈-핑크 플로이드-레드 제플린 순으로 록 음악의 계보를 다룬 음악 안내서를 읽고 이들의 음악을 접할 경우, 롹 스피릿이 몸에 베이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 책 <세계사를 바꾼 철학의 구라들>(이룸. 2007)의 원제는 ‘작은 철학사,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사상가들’이다. 저자는 쇼펜하우어 전문가로서 철학 심리학 교육학 사회학 등 학위만 4개인, 8방미인은 아니고 4방미인은 되는 인물이다. 학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다고 한다.

따라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을 것으로 믿어도 좋다. 그는 철학사를 4개의 시대(고대, 중세, 근대, 19~21세기)로 구분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주요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에서 20세기 미국의 분석철학자 리처드 로티까지 모두 55명이다. 각 시대별로 철학 개관을 통해 각 시대를 움직였던 정신적 추동력에 대한 정보를 요약하면서 각 사상가들의 사상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정의하는 각 시대의 특징은 고대는 근원에 대한 열정, 중세는 신앙을 위한 철학, 근대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인식 혁명, 현대는 전통에 대한 단절이다.

각 장에는 철학자의 이름 밑에 문패가 있는데 그 문패는 철학자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대표적인 명언을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각자의 철학자로부터 키워드를 하나씩 뽑고 있다. 한나 아렌트와 사유, 라이프니츠와 모나드, 사르트르와 자유 등이다. 본문은 철학자의 삶과 그들이 주장한 핵심 개념어들을 연결시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편지와 일기, 친분이 있는 다른 학자들의 회상을 곁들이고 있는데 이는 위대한 철학자들일수록 사적인 삶과 철학적 삶이 일치돼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한나 아렌트였던가? “사유하는 것과 철저히 행동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했던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는 것이 좋지만 댕기는 사람을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논술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라면 처음에는 정독을 하고 그 다음에 읽을 때는 굵은 색으로 표시된 주요 인용문과 개념어들만 건너 읽기를 해 보자.

다 읽고 나면 55명의 철학자와 문패로 사용된 인용문들을 얼마나 연결시킬 수 있는지 독후 활동을 해보자. 통합 논술 시험에서 철학자와 철학자의 사상을 연결시키는 문제가 나올 리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따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반론을 들려주고 싶다.

통합 논술 시험에 경제학자와 경제학자의 사상을 연결시키는 문제가 나오지 않지만 주요 경제학자가 주요 경제 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들이 현실 경제에서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는지 안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냐고 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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