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책 하난 통톡하라
경제책 하난 통톡하라
  • 북데일리
  • 승인 2007.12.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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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2008 서울대-연대-고대 수시 논술에서도 드러났지만 통합교과논술의 핵심에는 경제 논술이 있다. 먹고 사는 문제, 경제가 그만큼 중요해진 탓이 크겠지만 그보다는 변별력과 더 상관이 깊다. 논술과 통합논술의 가장 큰 차이는 표, 그래프 등 비언어적 자료들이 제시문으로 사용되는 횟수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논술 가이드 라인 때문에 풀이형 수학 문제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교 측은 수리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표와 그래프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표와 그래프는 원래가 친경제적이다. 신문에서 보는 대부분의 통계는 경제 관련 표들이다.

경제논술은 표를 해석하는 능력과 그래프에서 추론하는 능력을 살펴볼 수 있고,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도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는 셈이다. 학생들이 수학을 어려워하고 경제에 약한 한 변별력을 경제논술에서 찾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경제논술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경제논술은 개념 싸움이다.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 개념의 정확한 이해와 적합한 구사가 가장 중요하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사 경제 상식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통합논술에서 지식을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하지만 경제논술은 어느 정도 내용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배경지식이 많은 학생들이 유리하다.

앞서 말한 표나 그래프의 해석 능력을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 두 번째 특징이고 대안이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 세 번째 특징이다. 요즘 들어 딜레마 상황에서 합리적 의사 결정 모델을 찾는 방법에 대한 문제가 러시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 선택의 상황에서 효율성과 형평성 중,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이냐를 묻는 질문이 된다.

문제는 학생들이 경제논술을 어려워한다는 사실. 경제논술 공포증은 여학생들이 더 심하다. 이들은 대개 사회 문화나 윤리를 선택하는데다 “평소 경제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경제논술은 적어도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이다. 더 늦기 전에 경제 서적 한 권을 통독해 배경지식을 늘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가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키워준다면 학생들의 경제 배경 지식을 늘려주는 데 이 책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시대의창)이 큰 도움을 줄 듯 하다. 이 책을 읽고 필자는 학생들이 올해 최대 이슈인 ‘신자유주의-양극화-한미FTA’라는 세 마리 경제 토끼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저자는 말지의 인터뷰 전문 기자지만 그는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를 정리했을 뿐 실제 책의 내용엔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쁜 사마리아인’, ‘쾌도난마 한국경제’, ‘사다리 걷어차기’ 등 장 교수 대표작의 에스프리를 한 권으로 묶었다고 받아들이면 쉽다. 저자가 구어체로 자신의 사상을 비유와 사례를 들어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난이도에 대한 부담도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한미FTA에 목숨을 걸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자세다. 그는 국가 간 FTA보다는 다자간 협상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데, 참여정부는 “광개토대왕이 칼 차고 미국 정벌한다”는 식으로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해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리에게 큰 시장이 열릴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왕 버린 몸, 막 가자 주의’라는 과격한 표현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미FTA가 발효되면 망하는 1순위는 제약업, 농업, 정밀기계분야 등이다. 특히 미국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한국 기업들이 초토화될 가능성이 높다. 제약업을 예로 들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동아제약과 화이저의 매출액은 1대 100, 연구개발비는 1대 160 정도의 차이가 난다.

실상이 이 지경인데, 제도 바꾼다고 동아제약이 화이저가 될 수 있을까? 규제를 푸는 게 FTA의 핵심인데 그렇게 될 경우, 경쟁력 있는 상위 업체 2~3개 외에 나머지 업체들은 모두 망할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경제 발전이고 선진입국인가?

우리에게 떨어지는 몫은 미국 시장에서 파이 키우기가 아니라 분업 구조 고착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각 분야 1~2 등 말고 나머지는 살아남기 위해 더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옮겨 가야 하는 데 그걸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FTA는 대안이 아니라 도박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는 어떤가? 한 술 더 떠 한미FTA를 통해서 양극화를 해소하자고 한다. 서천의 소가 웃을 일이란다. 이렇게 정부가 환상을 품고 있는 상대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대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금융 자본주의 세력들인데 이들은 주주들이 기업의 주인인 주주자본주의로서 절대 장기 투자를 안 한다. 그들이 바라는 건 오직 단기 이익이다.

한미FTA를 무조건 찬성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반론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걸로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는지 정교한 논리를 대라”는 주문이다. 물론 이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내놓으라”고 한다. 장 교수는 어떤 대안을 내세우고 있을까? 그가 내세우는 대안은 사회적 대타협이다.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지금까지 국가가 주도하는 일본식 자본주의 모델이 한계에 왔으니 이를 포기하고 하루 빨리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로 이행하자는 주장이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격이라고 했다.

미국식 모델이 일본식 모델보다 마냥 좋은 걸까? 그동안 일본식 국가 동원 시스템에 의존해 왔다면 지난 10년은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미국식 시장 동원 시대였다. 그 결과 상위 5%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되는 양극화 세상이 왔다. 일본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니라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웨덴 식 사회적 대타협 모델이다. 다른 말로 민주적 동원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핵심은 분배를 늘리기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 사회 현실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국민 정서 때문이란다. 자기 자식 과외비 수십만 원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교육비 몇 천 원 더 내야한다면 난리를 치는 우리 정서에 스웨덴 모델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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