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문강좌, 이래도 되는 걸까
[기자수첩] 인문강좌, 이래도 되는 걸까
  • 북데일리
  • 승인 2007.12.1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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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인문학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마련된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가 한창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 학자 10명이 내년 10월까지 일반인들을 상대로 갖는 무료 공개강좌다. 서울 역사박물관 강당에서 매주 토요일 3시부터 열린다.

지난 8일 ‘인문학 스터디(http://cafe.naver.com/2008book)’ 회원들과 함께 강의장을 찾았다. 서울대 김모 교수가 강사로 나선 플라톤의 <국가> 편이었다. 김 교수의 강의는 2004년 서울대가 뽑은 우수교양 강의로 선정된 바 있다. 기대감이 컸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서양철학’ 전문가. 그가 쉽지 않은 텍스트 <국가>를 어떻게 풀어낼지 사뭇 기대가 됐다.

깨끗한 강의장, 진행 요원의 친절 등이 눈에 띄었다. ‘오늘의 세계에 던지는 플라톤의 물음’이라는 주제도 좋았다. 대선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분위기에 적합했다.

문제는 강의력이었다. 김 교수는 플라톤의 다양한 생각을 풀어 내지 못했다. 그저 답습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강의 시간 대부분이 자료집을 ‘그대로’ 읽는 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수강생 중 지원자를 받아 책을 읽고 강사도 따라 읽었다. 타성에 젖은 듯한 강의 방식이었다.

강의에 아쉬움을 느낀 이는 많았다. 강의 후 근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인문학 스터디’ 회원들이 펼친 강평시간에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 연구원, 출판기획자, 공연 비평가 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다.

“교수들의 강의법은 문제가 많다” “아무리 내용이 좋으면 뭐하나. 강의력이 따라주지 않는데” “자료집만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대부분이 김 교수의 강의법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자료집을 보고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점 ▲공개 강의인 점을 고려하지 않은 대학 강단식 강의 ▲청중을 몰입시키지 못하는 지루한 강의법 등이 언급됐다.

‘인문강좌’를 처음부터 수강했다는 이승배(35) 씨는 강의 형식을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이번 강의는 나은 편”이라며 입을 열었다. 교수들의 강의인 경우, 파워포인트 자료를 쓰인 대로 읽는 것은 다반사, 자료집 강독 수준에 그치는 상황 또한 비일비재 하다는 것.

이어 이진희(31) 씨는 강의 취지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인문학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마련 된 자리이나, 의도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이 씨는 “직접 와보니 대부분이 노년층이고 젊은이들은 보기 힘들다”며 “강의가 너무 지루해 전공자나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듣기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수강 대상을 파악하지 못한 강의라는 견해도 나왔다. 홍기영(36) 씨는 “대학 개론 수업도 아니고 공개강좌에서 이처럼 준비 없는 강의는 처음 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아무리 초보 강사라도 자료집을 대놓고 읽지는 않는다”며 “이럴 바에는 요약본만 구해 읽는 것이 낫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 강의법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 부산대 교수학습지원센터 등이 교수법, 강의법 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교육인적자원부 또한 ‘대학 교육력 향상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50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대학 유명 강의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수업의 질을 높이겠다니 지켜 볼 일이다.

상아탑을 이끌어가는 교수들. 지식전달자로서의 다양한 방법에 대해 얼마만큼 고민하고 있는지, 자성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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