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논술에 도움 되는 이유
심리학이 논술에 도움 되는 이유
  • 북데일리
  • 승인 2007.11.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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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서울 강북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면서 수능 언-외-수-사탐 4과목이 모두 1등급인 집사람 친구의 딸이 며칠 전 서울대 지균 면접을 보았다. 원서를 접수할 때 일이다. 법대가 아니라 사회과학대를 지망해 적잖이 놀랐다. 처음에는 법대가 아니라 경제학과를 지망하나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아이가 가고 싶어 한 학과는 심리학과였다. 집사람에게 간접적으로 이유를 물어 보니 “심리학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면서 “변호사가 아니라 심리학과 교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의 결정에 수긍했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법대 아니겠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귀동냥을 했단다. 웬 걸? 모두가 “심리학과를 가지 왜 법대를 갈 생각을 하느냐”고 했단다. 심리학과가 법대 못지않게 각광받고 있다는 점, 바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필자는 그 아이에게 수능이 끝나면 몇 권의 심리학책을 읽어두라고 했다. 사회과학대 교수들이 골고루 면접에 나서겠지만 그중에서 심리학과 교수도 분명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 권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21세기북스. 2007) 저자는 잘 나가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다. 겨우 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강의는 서울대가 인정하는 3대 명강의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의 베스트셀러 ‘생각의 지도’의 번역자이면서 그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미국은 심리학이 이미 학계를 평정했다. 미국에서 심리학의 위상은 그동안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잘 나가던 정치학을 압도하고 있다.

최근에 주요 일간지 북스면의 프론트 페이지를 장식하는 외국 학자들의 전공을 보라. 심리학자가 가장 많을 것이다. 대중적 인기뿐이 아니다. 석학 대접도 받는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심리학자인 다니엘 카네만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프레임이 바로 카네만의 이론이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창 혹은 세상을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저자가 보는 프레임은 현대인의 자기중심성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 속에는 자기 센터라는 게 있단다. 자신과 관련된 것만 기억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타인을 이해한다. 아전인수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인간은 철저하게 아전인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한계를 인정해야 이 세상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역지사지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는 법이다. 자기중심성을 깬 다음에 피해야 할 일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와 미래를 왜곡하는 일이다. 현재에 대한 집착은 경제적 선택에서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자기방어적인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 결론은 자기 방어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밖의 세상을 향해 돌진하라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심리학은 논술에 어떤 도움을 줄까? 우선 콘텐츠가 아니라 스타일, 형식을 배우자. 심리학책은 쉽게 읽힌다. 주장보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풍부한 편이다. 이 책 역시 이론 하나에 사례 하나를 들고 있어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그리고 읽고 나면 남는 게 있다. 이론이 꼭 내게도 해당될 것 같아 내 삶에 적용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논술문도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 교수님들이 내 글이 술술 읽히고, 읽고 나서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입력이 된다면 게임 오버 아닌가? 어차피 논술은 교수를 설득하는 글이다.

설득의 방법은 차가운 논리와 이성이 정석이지만 때로는 광고 카피 같은 강렬함, 감성적인 수사학도 필요하다. 통합논술로 바뀌면서 학생들 글이 무미건조해지면서 어금버금해졌기 때문에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면 창의성 면에서 점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내용적으로도 심리학은 도움이 된다. 2008학년도 서울대 논술 모의고사에서 카네만의 프레임 이론이 제시문으로 쓰이기도 했다. 조건부 확률을 묻는 문제였지만 사람들이 통계에서 흔히 범하는 심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5장인 이름 프레임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연세대 수시 문제도 그렇고 요즘 논술은 대세가 경제 논술이라고 봐야 한다. 기존의 철학 논술이 고전을 갖고 하는 자기 방어 기술이라면 경제학은 자기 밖의 세상을 향한 돌진인 셈이다.

경제학도 심리학으로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예 요즘 심리학은 경제학과 만나 경제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경제심리는 요즘의 문화 아이콘이다. ‘이코노믹 싱킹’, ‘경제학콘서트’, ‘경제학 비타민’, ‘괴짜 경제학’ 등 요즘 뜨는 경제 베스트셀러들은 경제 이론을 쉽게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경제 현상 속 신묘불측한 인간 심리 읽기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책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이 어려울지는 몰라도 경제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다.” 경제심리학은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면 어려운 경제 현상도 쉽게 풀 수 있다는 식으로 수식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있다. 경제를 어려워하는 학생일수록 쉬운 경제심리학 책으로 경제와 논술에 동시에 친해지는 것은 어떨까?

필자의 경험을 고백하자면 아이들은 이미 논술의 심리학을 만끽하고 있다. 영화와 심리학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진화심리학이 남과 여의 차이를 어떻게 보고 있고 웃음,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고 발생하는지 심리학 이론을 통해 이야기해주면 아이들은 덩달아 논술에까지 흥미를 갖게 된다. 그게 바로 심리학의 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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