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책]소설가 김연수 "난, 도넛으로 태어나"
[숨은책]소설가 김연수 "난, 도넛으로 태어나"
  • 북데일리
  • 승인 2007.11.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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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소설가 김연수는 빵집 막내아들이다. 평생 사서 먹을 빵보다 더 많은 빵을 ‘그냥’ 집어 먹었다고 한다.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 2004)을 보면 빵에 대한 그의 독특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도넛을 예로 들며 이런 말을 한다.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동그란 도넛에 서른의 스스로를 비유한 탁월한 문장이다. 이 책은 김연수 스스로 “다시는 이런 책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책은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을 실어 나른다. 김연수를 소설가로 만든 이안 와트의 <소설의 발생>이야기도 언급된다. 그는 “와트의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소설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중요한 책이기에 그럴까. 김연수의 평은 이렇다.

“와트는 이 책에서 영미권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주류 장르로 떠올랐는지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17세기 영미 사회의 기술적 진보가 없었더라면 소설이란 장르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전형인 문학사회학적인 관점인데, 나는 이 가설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론을 오독했는지 모르지만 그제야 천재가 아닌 나도 소설을 창작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얻게 된 것이다”

김연수에게 창작의 용기를 북돋워 준 책 <소설의 발생>(열린책들. 1988)은 이언 와트가 1957년에 쓴 책이다. 18세기 영국 사회 변화의 틀 속에서 소설의 부흥을 분석한 책으로, 영문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청춘의 문장들> 안에는 김연수의 족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기록들이 나온다. 그가 접했던 책은 물론이고 영화, 음악,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 등장한다. 소설가 김연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잊지 못할 숨은 책으로 기억할 만하다.

[고현욱 기자 my9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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