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의 출발, 일상에 눈 뜨기
논술의 출발, 일상에 눈 뜨기
  • 북데일리
  • 승인 2007.11.2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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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7차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과정을 국민공통과정으로 부르고 있다. 사회 과목의 경우 고 1때까지 배우는 공통 사회 과목은 크게 인간과 시간, 공간으로 구분된다. 고 2가 되면 인간은 윤리, 시간은 역사, 공간은 지리 과목으로 분화된다. 이중에서 역사와 윤리 과목은 논술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지리 과목은 어떨까? 제시문으로 도표는 자주 나오지만 지도는 잘 안 나오는 편이다. 지리 영역과 논술은 그다지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 지리를 직접 물어보지는 않지만 공간은 논술 시험과 아주 상관이 깊다. 공간은 현재 우리들이 사는 세상,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논술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물어보는 시험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법이다.

신문은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다루는 대표적인 매체지만 날짜별로 다양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편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공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공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뉴스에서 공간에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TV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봐왔던 공간의 이미지를 함께 떠올려 보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공간에 대한 문화적 접근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문화의 발견>(문학과지성사. 2007)은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공간이라는 기준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의 키워드 30개를 뽑고 이를 문화적으로 해설하고 있다. KTX 같은 이동 수단, 찜질방, 피시방 같은 문화 공간, 편의점이나 백화점 같은 유통 공간, 학교와 교회 같은 창조와 성장의 공간도 있다. 공간은 그야말로 우리의 삶 그 자체다.

누구나 다 알고 이용하는 공간이지만 우리들은 그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왕자의 구절처럼 온갖 볼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겉모습에 현혹돼 진짜 의미, 가치를 놓치고 있다.

책은 공간 속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필력으로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는데, 책을 읽고 나면 그 공간에 가고 싶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글이 살아 있다.

저자의 분석과 시각이 워낙 탁월하고 참신해 외웠다가 나중에 써먹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들 정도다.

예를 들면 그는 승용차라는 키워드에서 자동차라는 사유물과 도로라는 공유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는 속도로 상징되는 자동차와 여유로 상징되는 길이 조화할 수 있는 방법을 솔루션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솔루션은 ‘라르고’(매우 느리게) 라는 이름의 승용차가 등장하는 것. 이 차가 대박이 나면 속도에 중독되는 게 아니라 이동을 즐기는 것으로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찜질방에서 한국 사회의 평등 의식을 읽는다. 그는 한국의 찜질방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만인의 평등함을 확인하며 혼연일체가 되는 장소라고 본다. 경로당은 또 어떤가? 경로당에서 그는 고령화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낸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돌봄이 아니라 일이다. 노인이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계속 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로당은 동네나 지역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일감을 나눠 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대학이라는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원미달로 많은 대학들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대학들이 지자체와 유기적 연계를 맺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방의 대학들은 은퇴자들이 제2의 인생을 영위할 수 있는 멋진 삶의 터전을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평생학습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 50대면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이 잔인한 신자유주의 세상에 노인들이 이 사회에 기여를 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비판적 지성과 휴머니즘을 책 속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편의점’의 후반부에 보면 “일상의 편리함이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 엄청난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유니폼을 입고 시급 3천원의 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10시간 노동을 하는 알바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도 한국 사회 편의점 알바의 인권이나 임금 수준은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필자는 이 부분에서 특히 가슴이 아팠다. 시급 3천원 알바는 내 딸이 될 수 있고 내 조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의 행복과 편안함이 누군가의 불행과 눈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일상의 풍경들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이른바 문제의식을 키우라고 주문하고 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부록으로 딸린 ‘생각할 문제’는 답을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논술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사고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논술 학원에서는 절대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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