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시(詩) 읽는 즐거움에 푹...
가을, 시(詩) 읽는 즐거움에 푹...
  • 북데일리
  • 승인 2007.11.1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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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시(詩)가 낯선 독자라면 문학에세이 <시를 읽는 즐거움>(문이당. 2007)은 관심 가져 볼 만한 책이다. 적당한 눈높이의 감상과 해석으로 우리나라 대표 시 20편을 소개해서다.

저자인 이윤옥 문학평론가는 난해한 단어 사용을 줄이고, 문장은 짧게 끊었다. 때문에 평소 시를 읽지 않는 독자라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여기에 명료한 설명과, 그녀의 감수성 넘치는 표현이 덧붙여져 절로 시의 아름다움에 젖게 만든다. 제목 그대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

책은 정지용, 문태준, 채호기, 고두현, 기형도 등 이름 높은 시인들의 선별된 시를 담았다. 이 중 문태준의 ‘빈집1’과 기형도의 ‘빈집’을 들춰본다. 모두 사랑을 잃고 썼지만 시각의 차이는 분명한 시다. 자신의 이별은 어느 축에 속했는지 추억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빈집1-문태준

흙더버기 빗길 떠나간 당신의 자리 같았습니다 둘 데 없는 내 마음이 헌 신발들처럼 남아 바람도 들이고 비도 맞았습니다 다시 지필 수 없을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으면 방고래 무너져내려 피지 못하는 불씨들

종이로 바른 창 위로 바람이 손가락을 세워 구멍을 냅니다 우리가 한때 부리로 지푸라기를 물어다 지은 그 기억의 집 장대바람에 허물어집니다 하지만 오랜 후에 당신이 돌아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독들을 보신다면, 그 안에 고여 곰팡이 슨 내 기다림을 보신다면 그래, 닳고 닳은 싸리비를 들고 험한 마당 후련하게 쓸어줄 일입니다

▲빈집-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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