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은 다가올 동북아시대의 소금이죠"
"조선족은 다가올 동북아시대의 소금이죠"
  • 북데일리
  • 승인 2007.11.0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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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은 소금과 같습니다. 양은 적어도 꼭 필요한 게 소금이죠."

[북데일리] 이승률 연변과기대 부총장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 밑바닥엔 조선족에 대한 유별난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16년간 중국 연변 땅을 넘나들며 조선족을 계몽하고 교육해왔다. 조선족에 무관심한 이들로선 그의 깊은 애정이 낯설기만 할 것이다.

이 부총장은 원래 건설 쪽 일을 해온 사업가였다. 어느날 아주 특별한 만남을 계기로 삶의 행로가 180도 바뀌었다. 1990년 10월. 이 부총장은 사업차 중국에 갔다. 한-중 수교를 예측하고, 칭다오에 골프장 사업을 하려한 것이다. 그를 위해 중국 실력자(국가 지도자 아들)을 만나러 갔다.

공교롭게 약속이 겹쳐 한 한국인이 먼저 실력자와 만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미국에서 온 김진경 박사(현 연변과기대 총장 및 평양 과기대 설립총장)였다.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과학기술을 가르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다. 학교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김 총장이 실력자에게 부탁한, 바로 이 말이 이승률 부총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산 모두를 교육사업에 쓰겠다는 그의 큰 뜻이 자신을 부끄럽게 했던 것이다. 중국의 젊은이는 다름아닌 조선족이었다. 이 부총장은 당시 받은 충격과 감동을 김 총장에게 전하며 동참의 뜻을 밝혔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일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1992년 중국의 첫 외국과의 합작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학(YUST)이 탄생했다. 십수년 불모지에 대학을 세우고 동량을 길러냈으니, 그 의미는 남다를 터다. 하지만 한국과 동북아 미래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한 대학 하나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바로 삶과 교육의 젖줄이 되 준 대상이 조선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족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최근 이승률 부총장이 쓴 `동북아시대와 조선족`(박영사, 2007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한반도와 중국의 변연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조선족 문화는 한반도 문화와 중국 문화의 융합으로 형성된 이중문화구조로, 한중 관계 발전에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족은 앞으로 전개될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의 핵심 키워드이며, 중요한 매개체라는 것이다. 책은 한마디로 조선족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책에 따르면 조선족은 150여년 전부터 중국으로 이주해 현재 200만 정도가 살고 있다. 이 이주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다난한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컨대 혹독한 일제치하엔 이주가 크게 늘었다. 일제가 한반도를 병합한 후 1918년까지 동북지역에 이주한 한민족은 대략 40여만명. 항일 운동 혹은 일제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난 이들의 애닯은 사연을 웅변해주는 수치다.

조선족은 짧은 이주 역사가 말해주듯, 이미 민족성과 우리 문화를 형성한 채 중국으로 건너갔기에, 중국내 타 소수민족과 차별점이 뚜렷하다. 이는 조선족을 낮춰보거나 무관심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승률 부총장은 바로 이 조선족의 정체성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선각자다.

연변과기대의 위상은 중국에 설립된 최초의, 전무후무한 사립대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조선족의 교육과 실용적 학문 학습을 통한 인재 양성이란 뜻을 중국 정부가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쪽에서 보면 한국 역사를 모르는 조선족을 일깨우게 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족 사회 공동체의 등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조선족은 현재 한국, 일본, 몽골,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까지 활발히 진출해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조선족을 좀 더 크게 `써먹을` 일은 못하고 있다.

이와관련 이 부총장은 "현지서 한국에 진출할 인력에 대한 교육과 취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교회나 NGO에서 할 뿐 정부나 기업 차원은 없다."고 전했다.

특히 동북아 국제 협력 측면에선 조선족에게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조선족의 진로에 대해 이번에 나온 신간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조선족은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한 중개자가 될 것이다. 일본은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낫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과는 민간교류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이런 배경은 한- 중관계나 한반도의 평화통일, 더 나아가 동북아 구도에 조선족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한다."

아마도 독자들은 밋밋했던 조선족에 대한 체감 온도가 이 책을 통해 상당히 높아져 감을 깨달을 것이다.

요즘, 이 부총장은 몇 년 전부터 북한 쪽에 발걸음이 잦다. 연변과기대의 순수한 취지와 성공사례를 본 북한이 2001년 평양과기대 설립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교육 사업의 씨앗이 중국에서 연변과기대라는 꽃을 피웠다면, 북한에서 아주 알찬 열매를 맺게 된 셈이다.

[임정섭기자 4ever00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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