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함께 걷는 것 만으로 아름다워
청춘, 함께 걷는 것 만으로 아름다워
  • 북데일리
  • 승인 2007.11.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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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특별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소설이 있다. 일본의 인기작가로 급부상한 온다리쿠의 <밤의 피크닉>(북폴리오. 2005)이 바로 그것.

국내 독자들에겐 일본 추리소설 작가로 잘 알려진 온다리쿠의 작품은 추리소설이란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SF와 판타지, 괴담, 청춘물, 로맨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기이한 상상력이 온다리쿠만의 전매특허. 이런 작가의 독특함은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작가의 기괴한 상상력을 거부하는 독자도 있다.

<밤의피크닉>은 온다리쿠 작품 가운데 국내에 처음 소개된 소설이다. 장르는 놀랍게도 청춘물. 온다리쿠만의 색깔이 가장 적게 묻어나고 내용 또한 비교적 단순해 쉽게 읽힌다.

남녀공학인 북고(北高)에서는 해마다 보행제(步行祭)라는 행사가 열린다. 아침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꼬박 하루를 그저 걷기만 하는 것. 입시를 코앞에 둔 주인공 도오루에게 보행제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고교 시절 마지막 추억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성격 좋고 속 깊은 여학생 다카코가 이 소설을 이끄는 또 한명의 주인공이다. 도오루와 다카코는 같은 반 친구이면서도 유별나게 사람들 앞에서 서로를 외면하기 일쑤. 친구들 사이에 두 사람이 몰래 사귄다는 소문이 돈다.

소설은 주인공들이 80km를 걷는 보행제를 출발하는 시점에서 시작해 보행제를 마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긴장과 기대감으로 시작된 출발 아침부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새벽을 지나 다음 날 아침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마음속에 담긴 응어리를 풀고 화해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오루와 다카코 사이에 얽힌 해묵은 감정과 오해를 풀어내고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과정은 추리소설 작가 다운 방법으로 흥미롭게 진행된다. 물론 주인공들에게 처해진 문제가 해결되거나 현실이 바뀌지는 않지만 하룻밤 사이에 그들의 내면은 분명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은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도 숨 막힐 듯 팽팽히 조여 오는 긴장감도 없지만, 인간이 가진 내면의 깊은 성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따뜻함이 담겨있다. 그렇다고 크게 거창하거나 대단히 교훈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설 속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소설의 마지막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돌아보면 창피할 정도로 어설프기 짝이 없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청춘이란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가슴 시린 추억으로 아로새겨져 촉촉이 빛난다. 마치 독자도 그들처럼 꼬박 하루를 걷고 뛰며 한없이 좋았던 청춘의 한때를 조우한 기분이다.

단지 함께 걸었을 뿐인데,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이토록 가슴 벅찰 수 있다니... 그래서 청춘이 아름다운 것일까.

[구윤정 기자 kido99@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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