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못 마시는 타임스퀘어는 어떤 모습?
술 못 마시는 타임스퀘어는 어떤 모습?
  • 북데일리
  • 승인 2007.10.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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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미국의 애주가들에게 1920년 1월 16일은 기억하기 싫은 날이다. 금주령을 국법으로 만든 ‘볼스테드 법령’이 시행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수많은 도시가 악몽에 시달렸지만, 그 어느 곳보다 술 문화가 발달했던 뉴욕의 타임스퀘어는 그 정도가 유달리 심했다. 브로드웨이의 훌륭한 전통 있는 식당들은 3년이 채 되지 않아 모조리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는 핫도그 노점, 소다수 가게, 심야 간이식당 ‘커피포트’가 생겨났다.

또한 브로드웨이에서 밤, 낮을 보냈던 배우, 무용수, 합창단원, 작곡가, 작가, 무대감독, 매니저, 제작자 들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금주령이 한창이던 1925년, 수필가 벤자민 드 카세라스는 회고록 <뉴욕의 거울>에서 “이 모퉁이에서 술집이 빠른 속도로 쇠망하고 그 폐허에 초콜릿과 탄산수 가게가 선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일”이라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주령은 음주 자체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몇 년이 안걸려 타임스퀘어 주변에 수백 개의 무허가 술집이 생겼던 것. 특히 브로드웨이를 가로지르는 40번가와 50번가까지의 브라운스톤이나 식당의 2층, 가게 뒷방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얼굴을 보여주거나 이름을 대고 들어갔다. 미닫이 창이나 문에 난 창살 달린 구멍에다 암호를 속삭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가정집이 술집으로 변하기도 했다. 어떤 집은 최신 잡지들과 푹신한 안락의자, 얼음과 소다수를 넣은 스카치 위스키를 제공해 유명세를 탔다.

또한 갱스터가 소유한 나이트클럽이 성행했다. 더치 셜츠, 오우니 매든, 럭키 루치아노와 같은 지하 세계의 거물들은 술 밀매와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했다. 이들이 관여한 나이트클럽은 암흑의 소굴이었다. ‘뉴욕 해럴드’의 사회부 편집장을 역임했던 스탠리 워커는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썼다.

“아무리 좋은 나이트클럽이라도 그것은 모든 의미에서, 넓고 말끔한 카바레를 엉터리로 모방한 것에 불과했으며 안 좋은 나이트클럽은 끔찍할 정도였다. 깡패, 포주, 좀도둑, 소매치기, 얼뜨기, 귀금속 도둑, 전문 폭력배, 살인 청부업자, 전과자들의 소굴이었고 후기에는 납치와 공갈 협박을 일삼는 자들까지 모여들었다.”

이후 1929년 대공황이 불어 닥치고, 1933년 금주령이 폐지되면서 타임스퀘어는 다시 한 번 변화를 맞는다. 나이트클럽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새로운 형태의 오락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영화관이나 스트립쇼를 벌이는 벌레스크 무대가 그것이다.

기자 출신 제임스 트라웁이 쓴 <42번가의 기적-타임스퀘어의 몰락과 부활>은 이런 타임스퀘어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책에 실린 생생한 증언과 묘사는 “타임스퀘어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한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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