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첫 한국 장애인박사 만든 `우주인 교수`
도쿄대 첫 한국 장애인박사 만든 `우주인 교수`
  • 북데일리
  • 승인 2005.09.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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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인 전영미(36)씨. 1급 시각장애인으로서 일본 생활 10년만에 한국인 첫 장애인 박사탄생이라는 낭보를 전했다.

`시각장애인 침사의 침시술에 있어서의 과제와 위생적 시술 방법의 확립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는 전씨 뒤에는 지도교수 후쿠시마 사토시(43) 교수가 있었다.

후쿠시마 교수는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진 장애인으로 83년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에 시청각장애인으로는 일본 최초로 대학에 입학한 인물. 이어 그는 대학 졸업 후 도쿄도립대 대학원에서 장애아 교육을 전공, 대학조교와 조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도쿄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해오고 있다.

`동양의 헬렌 켈러`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학자다. 지난 2002년 책 자전에세이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중심)을 펴낸 그는 `감각`을 상실한 소통부재의 두려움을 `손가락 점자` 이용해 극복하고 스스로 `새로운 우주`를 열어 제쳤다.

아홉 살때 심각한 눈 질환으로 시력을 잃은 후쿠시마 교수는 고교 2학년이던 18살 때 청각까지 잃는 고통을 겪는다. `빛`을 잃었을 때는 `소리`는 통해 세상과 대화할 수 있었지만 `소리`마저 빼앗겼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책에서 후쿠시마는 "나는 세계를 상실했다. 조용한 밤, 영원히 계속되는 고요한 밤의 정적, 나는 그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당시 심경을 담담히 토로한다.

점자 타이프라이터나 점자판을 이용한 필담은 너무 느리고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소통의 부재`를 절감해야 했다. 세상과의 단절은 큰 좌절감을 맛보였지만 그에게 어머니는 또다른 은혜를 베풀었다.

시청각 장애를 얻게된 뒤 3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날도 세상과 단절된 고통을 고성과 울음으로 고스란히 어머니한테 발산하고 있었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문득 생각난 듯 후쿠시마의 손을 잡더니 손가락에 어머니의 손가락으로 점자를 쳐 왔고, 그가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이 손가락 점자의 시작이었다.

손가락 점자는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익숙해지면 매우 빨리 풍부한 내용으로 상대방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 손가락 점자의 `위대한 발견`으로 후쿠시마는 다시 세계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청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에 입학, 비장애인들에게 손가락 점자를 전수하며 새로운 인생을 열게 됐다.

에이즈 문제로 사회를 떠들썩했을 당시 손가락 점자로 `대화`를 나누다가 겪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이다. 전철 안에서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다가 `동성연애자`로 오해받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날 버스 안에서 여자 친구와 `대화`하던 중 "이봐 젊은이, 버스 안에서만이라도 손좀 놓을 수 없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친구들은 "너 시청각장애인이 되어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좋은 점도 있잖아. 여자들 손을 맘대로 잡을 수 있으니 말야"라며 부러움(?)에 섞인 농담도 던진다.

어머니와 더불어, `후쿠시마의 힘`은 장애를 담담히 받아들인 여유와 이를 통해 유머감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찰을 찾은 그가 스님의 맨질맨질한 머리 감촉이 어떨까 궁금한 나머지 스님에게 간청해서 머리를 만져 보고 "까끌까끌, 울퉁불퉁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며 주위를 웃겼다.

스스로 `우주인`임을 자처하는 후쿠시마 교수. `손가락 점자`가 언젠가 전 우주의 만국공통어가 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외계인과의 통역을 부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북데일리 노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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