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추리! 좌충우돌 한 가족 이야기
코믹+추리! 좌충우돌 한 가족 이야기
  • 북데일리
  • 승인 2007.08.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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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아시나요? 소설마다 용도가 있습니다. 한없이 슬프거나 침잠하고 싶을 때 읽는 소설,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위로받기 위해 읽는 소설, 지적 호기심이나 탐구심이 발동했을 때 읽는 소설, 유려한 문체와 구성, 찰나의 순간 묘사에 반해 읽는 소설, 상상력의 풍선을 붙잡고 하늘로 둥둥 떠다니고 싶을 때 읽는 소설 등등.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세요? 저는 욕심이 많아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다 좋다고 해야겠습니다.

에프라임 키숀과 마르셀 에메, 그리고 다니엘 페낙. 그럼 이 세 작가의 작품은 언제 읽으면 좋을까요? 삶이 고될 때 따뜻하게 보듬어 주며, 분수처럼 주위에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주는 작가들이니 기왕이면 심신이 지쳤을 때 읽는 것이 좋겠죠?

세 작가의 작품들을 읽고 있노라면 한 시간도 안 되어, 고단했던 마음은 어느덧 휘발되고 대책 없는 어린애처럼 즐겁고 유쾌해집니다. 믿어보시거나 읽어보시거나.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소설은 다니엘 페낙의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문학동네. 2006)입니다. 뒤늦게야 번역된 말로센 시리즈 중 그 첫 번째죠. 말로센 시리즈는 다섯 편 남짓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미 프랑스에서 1985년에 발간되었던 첫째 편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가 문학동네를 통해 작년에야 겨우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두 번째 편이 번역되어 나올 때까지 앞서 번역됐었던 후편들도 읽고 싶지만, 시리즈는 차례대로 읽는 게 제 맛이니 꾹꾹 참고 아껴 두는 중입니다.

사실, 다니엘 페낙의 작품을 소개드리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제가 그만큼 흠모하는 작가이자 바른 교사상을 가진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실의 모습을 날카로운 눈으로 잡아내지만, 그의 눈에 잡힌 현실은 유쾌하고 따뜻하며, 소외된 이들에게도 공정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장담하건대, 그의 재치와 익살에 넘어가지 않을 독자는 없습니다. 목석이 아닌 이상, 넘어가지 않을 이유도 없지요.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에 등장하는 말로센 일가의 첫째, 뱅자맹 말로센은 백화점 품질관리원입니다. 말이 품질관리원이지, 고객의 불평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불쌍한 ‘희생양’이자 세상에 더 없는 ‘성자’이죠. 어딘가 모르게 불쌍하고 왜소해 보이는 그는, 실은 무책임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가 다른 골치 아플 만큼 개성이 강한 동생들을 넷이나 거느리고 있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입니다.

어느 날, 그가 일하고 있는 백화점에서 연쇄 폭발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늘 뱅자맹은 사건이 일어난 그 자리에 있고, 동생들이나 키우는 개 역시 묘하게 사건과 얽혀 있습니다. 안타까움과 억울함에 눈물이 난다기보다는 대처 방식의 어이없음에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말로센 일가의 이야기. 추리소설의 형식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대책없는 가족사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뭐, 코미디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밖으로 나오니 맨발로 바늘 박힌 양탄자를 걷는 느낌이다. 눈꺼풀에 경련이 일고, 손이 떨리고, 이가 딱딱 마주친다. 도대체 그 예마니아가 내 커피에 뭘 집어넣은 걸까? 저녁 여덟 시 반에 백화점 직원식당에서 열릴 예정인 노조 집회에 가기 전, 나는 집에 들러서 발륨(Valium, 신경안정제) 세 알(복수형은 발리아인가?)을 삼킨다. 발륨은 내 신경 상태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고 내 몸뚱이만 구름 속에 띄워놓는다. 밖에서 보면 나는 부유하는 중이고, 안은 끝없이 돌며 구워대는 꼬치구이 전기 그릴처럼 지글거린다. (103p)

터키 커피를 즐겨 마시는 말로센이 브라질 커피를 마시고 쿠드리에 경찰서장과 이야기하고 나온 후의 장면입니다. 참으로 감칠 맛 나는 바람직한 서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니엘 페낙은 작품 전체를 이끄는 상상력이나 재치도 뛰어나지만, 당대의 현실이나 현상, 순간을 묘파하여 보여주는 능력이 실로 대단한 작가입니다.

저는 뱅자맹 말로센이 저와 같이 터키시 커피(Turkish Coffee)를 좋아한다는 사실만 해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터키, 그리스 등지에서 흔히 마시는 터키 커피는 설탕과 커피를 같이 넣고 끓여, 아니 끓인다기보다는 달여 작은 잔에 거품이 나게 따른 후, 고운 원두 입자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마시는 단 커피입니다. 마시고 나면 바닥의 원두가루가 커피 잔 안쪽에 묻어나 무늬를 만들게 되지요.

알고 지내던 터키인 친구는 집시도 아니었는데, 잔에 남은 무늬의 흐름으로 앞일을 잘도 가늠한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긴 했었는데 마침 그 친구의 집에서 커피를 마실 기회가 되어 부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는 앞으로의 제 연애의 향방을 가늠해 주었는데, 저는 지금 정확히 그 반대로 살고 있으니, 점괘는 맞았다고 볼 수 없지만, 아무튼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얘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하도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약간의 동질감에도 그만 솜사탕 부풀듯 부풀었습니다.(사실, 마르셀 에메나 다니엘 페낙을 얘기할 때는 늘 이렇습니다) 각설하고, 작가가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것은 ‘공존’입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전 식민지를 돌아다니며 살아왔던 작가의 세월은 작품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페낙은 소수자들, 이를테면 외국인들이라든가 동성애자, 노인과 버려진 아이들을 작품에 등장시켜 그들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니엘 페낙의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동화들 역시 꼭 시간을 할애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까보 까보슈>(2000. 문학과지성사)나 <마법의 숙제>(문학동네. 2004),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완성하는 소설 <상상력 먹고 이야기 똥 싸기>(낮은산. 2004) 등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읽으며 정을 다지기에도 손색이 없는 책이라 권합니다.

또한, 모든 프랑스 인이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처럼>(문학과지성사. 2004) 역시 추천해 드려야겠죠? 작가는 어릴 적에 베갯머리에서 들었던 신나는 이야기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바뀌어 ‘책읽기의 괴로움’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독자의 열 가지 권리’를 속 시원하게 제시해주는 탁월한 에세이니 부디 누리소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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