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에 `글날` 들이민 고종석
이오덕 선생에 `글날` 들이민 고종석
  • 북데일리
  • 승인 2007.08.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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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이 살아 계셔 이 글을 읽으신다면 고치실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이 고치신 곳을 내 고집대로 되돌려 놓을지도 모른다”

[북데일리]우리말 쓰기의 대가 이오덕(1925~2003) 선생에게 언어학자 고종석이 ‘글날’을 내밀었다. 신작 <말들의 풍경>(개마고원. 2007)에서다. <국어의 풍경들>(문학과지성사. 1999)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 2006) 등으로 알려진 고종석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언어학자. 한국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엮어 이번 책을 냈다.

고종석이 이오덕에게 내민 도전장은 이렇다. 이오덕의 우리말 치료는 어휘 수준을 훌쩍 넘어서 문체에 이르고 있는 만큼 그에게 ‘양호’ 판정을 받을 글쟁이는 거의 없다는 것. 책에 따르면 이오덕에게 겨우 ‘퇴원 허가’를 받은 이는 함석헌, 문익환, 권정생 정도다.

주시경이나 최현배 같은 국어학자 조차 영어 문법의 과거완료 시제와 과거완료형 시제를 베껴와 ‘-었었다’ ‘-고 있었었다’ 따위를 우리말 시체 체계에 넣었다는 이유로 이오덕에게 ‘입원 가료 판정’을 받았다.

‘퇴원 허가’ ‘입원 가료판정’의 표현을 써 이오덕의 글쓰기를 평한 고종석의 문장력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 역시 이오덕에게 공감하면서도 해묵은 습성을 이기지 못했다고 실토하는 대목은 솔직하다.

고종석은 신경증에 가까운 이오덕의 글쓰기를 경외하면서도 반발한다. 이오덕의 글을 ‘언문일치’ ‘구비문학’이라 평하며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하는가 하면, “선생이 고치신 곳을 내 고집대로 되돌려 놓을 지도 모른다”며 튕기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말들의 풍경>이 주는 쾌감이다.

“신문이 우리말을 모조리 망쳐놓았다”고 호통 치던 이오덕이나 “한국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모든 말들의 풍경을 살필 것”이라고 벼르는 고종석이나 무림의 고수이기는 마찬가지. 두 쟁쟁한 문장가가 보여주는 경쟁은 일종의 선물이자 학습터이다.

<말들의 풍경>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고종석이 이오덕 못지않은 언어학자임을 알아챈다. 당대의 국문학자라 꼽히는 김윤식조차 고종석의 화살촉을 피해가진 못한다. 김윤식은 100권의 저작을 낸 글쓰기의 달인이다.

그는 김윤식을 일컬어 “문단 한편에서 들추듯 그의 비평은 해석의 타당성을 떠나 작품의 줄거리 자체를 그릇 잡아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며 “너무 많이 읽는 탓에 읽기의 밀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른다”고 비판한다. 물론, 지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종석의 매력은 ‘균형점’에 있다. 그의 글에는 날선 비판과 그에 준하는 어루만짐이 공존한다. 고종석은 김윤식에 대한 흠모 역시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트집이 무슨 소용이랴? 20세기 한국문학 텍스트를 김윤식만큼 많이 읽은 사람은 없다. 20세기 한국문학에 대해 김윤식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도서관 한 구석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텍스트들이, 그리고 그 텍스트들의 저자들이 김윤식의 손을 거쳐 한국문학사에서 제자리를 얻었다”

이어지는 고은, 언론학자 강준만(전북대 교수)을 평한 대목 또한 흥미롭다. 책 전체에 걸쳐 펼쳐지는 한국어를 둘러싼 다채로운 풍경이 풍족감을 준다.

사실, <말들의 풍경>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문이다. 고종석은 ‘말들의 풍경’이라는 표제를 빌려준(?) 문학비평가 김현(1942 -1990)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말들의 풍경’은 김현이 남긴 유고평론집의 표제다.

고종석은 김현을 일컬어 “문학이 다른 무엇에 앞서 언어의 예술이라는 판단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말들의 풍경을 탐색하는 데 생애를 바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어 “말들의 풍경을 탐색하는 그의 말들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인다.

“내 어쭙잖은 글쓰기의 8할 이상은 김현의 그늘 아래 이뤄져 왔다”고 고백하는 고종석. 그가 벗겨낸 ‘한국어의 켜 하나하나’는 우리말이 이제껏 도달하지 못한 일종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망설임 없이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수백 권의 뭇 신간 중 돋보이는 `일학`(一鶴)이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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