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책]다산이 전하는 생활의 아름다움
[숨은책]다산이 전하는 생활의 아름다움
  • 북데일리
  • 승인 2007.07.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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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다산 정약용(1762-1836)의 집필 범위는 무한했다. 천문, 지리, 의학, 과학, 철학, 경세학에 이르기까지 그가 도달하지 못한 분야는 없었다. 다산이 남긴 저작은 한사람이 베껴 쓰기에도 10년이 넘는 분량이라고 한다.

이 중 <여유당전서>를 바탕으로 한 산문집 <뜬세상의 아름다움>(태학사. 2001)은 <목민심서> <다산 문선> 등에 비해 덜 읽힌 책이다. 한문학자 정민, 안대회가 역자로 나선 태학산문선 시리즈다.

“세상은 변해도 삶의 본질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는 진리를 내세운 태학산문선 시리즈는 박제가의 <궁핍한 날의 벗>,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 윤오영의 <곶감과 수필> 등을 통해 옛 글 읽기의 참 맛을 일깨운 전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뜬세상의 아름다움>에 실린 글은 다산의 인간적 내면을 보여주는 시와 문장이 많다. 이글들을 읽다 보면 ‘위대한’ 다산이 ‘가까운 이웃’처럼 살갑게 느껴진다. 아내를 그리워한 평범한 아비, 자연의 감흥에 젖는 남자로서의 다산이 등장한다.

다산은 완벽주의자로 불리곤 한다. 독서를 향한 불굴의 의지, 자식들을 꾸짖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 치열한 논박을 벌이던 학자. 오랜 유배지 생활 중에도 수많은 저작물을 남긴 다산의 글쓰기와 책읽기는 지금까지도 ‘유별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뜬세상의 아름다움>에 비친 다산은 다르다. 책 속의 다산은 한 없이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이를 보여주는 몇 구절이다.

“나는 약간의 돈으로 배 한 척을 사련다. 배 안에는 어망 네 댓 개와 낚싯대 한두 대를 벌려 놓고, 크고 작은 솥, 술잔과 쟁반 등 여러 가지 부엌살림을 갖추고 방 한 칸을 만들어 구들을 놓고 싶다”

다산이 꿈꾸던 전원생활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로 작업의 건강한 노동을 동경하는 이 글은 1800년 4월경에 지어졌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 살고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부쳐왔다. 그녀가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 색 활옷이었다. 붉은 색은 이미 씻겨 나가고 노란 색도 희미해져서 책 장정으로 삼기에 적당했다. 그래 가위로 말라서 작은 공책을 만들어 놓고 손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적어서 두 아들에게 남겨준다”

성실한 보통 남편으로서의 다산이다. 다산은 15살 된 1776년 2월 22일에 풍산 홍씨과 결혼 해 만 60년을 해로 했다. 다산은 부부의 회혼일인 1836년 2월 22일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 ‘회혼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국화꽃에 대한 상념, 뜨락의 꽃나무를 묘사한 대목 등. 전원생활을 향한 오롯한 동경이 담긴 대목이 많다.

<뜬세상의 아름다움>의 가장 큰 묘미는 다른 책에서 만나지 못한 다산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문 후 이어지는 정민, 안대회의 풀이 글 또한 알차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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