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의 ‘…팝니다’ 매물광고는 누군가의 죽음
쪽방촌의 ‘…팝니다’ 매물광고는 누군가의 죽음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1.20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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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은 관심없는 이야기> 미스타조 글 / 큰글사랑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독거노인들의 삶과 민낯을 담은 <어쩌면 당신은 관심없는 이야기>(큰글사랑.2015)는 독자를 숨 쉴 틈 없게 한다. 절절한 사연들과 가슴 시린 이야기들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관심 없는 척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홀로 쪽방촌에 사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다.

그녀는 항상 라면을 반 개씩만 끓여 먹는다. 두 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먹었던 라면보다 더 많은 약을 삼킨다. 그 후 기도를 드리며 홀로 죽을 때 제발 무섭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다음 책상에 붙어 있는 수많은 포스트잇에 쓰인 이름을 위해 정성을 다하며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하얀 약통이 들어 있는 상자를 조슴스레 열어 쓰다듬는다. 하얀 약통에는 그녀가 쪽방촌에 살게 된 사연이 있었다.

6‧25 전쟁 후 몇몇 가족만 서울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어린 나이에 봉제 일을 시작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9세 때 과묵한 군인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뿐이었다. 도박에 손을 댄 남편은 몇 차례의 탈영 끝에 불명예제대를 하고, 어느 날 하얀 약통 속 수면제를 삼키고 자살한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그녀는 남편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하얀 약통을 주워준 날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쪽방촌에 들어와 남편을 그리며 살고 있다.

책에는 쪽방촌 매춘에 관한 내용도 실렸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사는 궁극적인 이유는 홀로 죽어가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점 때문이다. 독거노인의 죽음은 곧 대개 고독사로 이어져 모여 살길 원한 것이다.

하지만 쪽방촌 내에서 사람들끼리의 교류가 활발한 것도 아니다. 다만 문이 며칠 열리지 않으면 필시 사망했다 여긴다. 이곳 사람들 가운데 사망자의 흔적을 치우고 대신 망자의 유품에 대한 권리를 갖는 사람들도 있다. 유품을 고물로 내다 팔아 생계를 꾸린다. 휴대용 가스버너, 잘 나오지 않는 TV, 라디오, 식기류 등의 매물 광고가 나오면 누군가의 부의 공고와 다름없다.

독거노인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가족이 있었고, 삶의 성공과 실패도 겪었다. 우리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누군가 곁에 있을 거란 생각은 막연할 뿐이다. 개개인의 관심과 제도가 절실하다는 책의 호소는 분명한 무게가 있다.

“제도적 해결은 개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빈 그릇에 지나지 않으며 개인적 해결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흩어진 밥알에 불과하다.” -프롤로그 중에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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